모델 지망생이 새벽에, 알몸으로 뛰쳐 나온 까닭은?
류 씨의 옥탑방에서 알몸으로 탈출한 피해여성의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오른쪽은 류 씨의 SNS.
A 씨가 지목한 가해자는 편의점 근처 옥탑방에 거주한다는 류 아무개 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새벽 6시 10분경 옥탑방에서 잠들어 있던 류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놀랍게도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로 지목된 류 씨가 문화예술계 청년들이 모여 세운 비영리자선단체의 대표이며 나이도 한 매체 인터뷰에서 밝힌 27세가 아닌 21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수성가한 청년 자선단체 대표’의 민낯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류 씨와 A 씨는 사건 발생 전날인 21일 처음 만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연기공부를 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 두 달째 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A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선단체 대표인 류 씨를 알게 됐고, 페이스북 친구가 된 류 씨는 A 씨에게 ‘자선단체 홍보 뮤직비디오를 찍는데 여자 주인공이 필요하다’고 접근해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지난 11월 21일 저녁 7시, A 씨는 오디션을 진행한다는 류 씨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류 씨를 만나 독산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 A 씨는 ‘날씨가 추우니 집에 가서 오디션 관련 이야기를 마저 하자’는 류 씨의 제안에 따라 약속장소 인근에 있는 류 씨의 옥탑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류 씨가) 명성도 있고 페이스북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탑방으로 자리를 옮긴 류 씨와 A 씨는 별도의 술자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디션 관련 이야기를 하자던 류 씨는 오디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고 A 씨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금천경찰서 강력팀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많이 당황한 상태였지만 비교적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목이 졸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그 외 별도의 외상은 없었다. 아직 진단서는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성폭행 현장에 있던 A 씨는 사건 발생 후 류 씨가 잠 든 틈을 타 옷을 입을 새도 없이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류 씨가 왼쪽의 대학생 해외봉사 기사에 대해 SNS를 통해 자기의 소신을 털어놓았다.
류 씨 또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지금까지 계획되고 있는 행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좀 더 알차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행사들을 기획하고 진행시키겠다”며 “요즘 청년들이 스펙 쌓기를 위한 기업들의 해외봉사에 목숨 걸 듯이 지원을 하는데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돕기 시작하면 조금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라고 답해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자선단체 대표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된 SNS 게시물 중에는 외제차를 타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나, 본인이 쓰는 책의 내용 중 일부라며 공개한 내용이 “집안 어디 가서 안 꿇리지” “국적 미국이라 영어 잘 하지”, “얼굴 이 정도면 반반하지”, “머리? 멘사니까 이 정도면 유전자에도 괜찮지”라는 과시적인 부분도 있어 봉사활동을 독려하는 여타의 게시물과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류 씨는 일부 프로야구 선수와의 친분을 공개하며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6월과 8월에는 프로야구 B 선수와 C 선수가 류 씨가 대표로 있는 자선단체에 성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당시 C 선수의 경우 보도자료를 통해 류 씨를 “여러모로 힘들 때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정말 좋은 분이다. 형으로서 존경스러울 만큼 멋진 마인드도 있고 점점 따르다보니 내가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소외된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류 씨는 주변의 기대와 존경과는 달리 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구속되고 말았다. 경찰에 체포된 류 씨는 처음에는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A 씨가 옷을 입지 못한 채 황급하게 도망치는 CCTV 영상을 제시하며 추궁하자 “성관계를 가진 것은 맞지만, 합의 하에 이뤄진 것으로 강제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금천경찰서 강력팀 관계자는 “아직 추가 피해자 제보는 없다”며 “A 씨의 증언과 그에 따른 정황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해 신속하게 영장이 청구됐고, 류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