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한번으로 1천억이…’ 도난사고 ‘뻥뻥’ 화폐가치 ‘뚝뚝’
이러자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비트코인 비관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경제·금융전문 사이트 ‘마켓워치’는 지난 4일 “극심한 가격 변동성이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지급 시스템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했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내재가치가 없어 화폐로서 가치는 없다”고 단언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화폐로서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앙통제기관이 없고, 2145년까지 2100만 개로 공급량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금과 닮았다. 하지만 금과 달리 그 자체로서 가치가 없다. 또 익명성 때문에 유통가치보다는 사재기성 저장수단으로 오히려 더 주목을 받다 보니 유동성 부족(가격형성을 위한 충분한 유통물량의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1년에 새로 공급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2009~2012년 50비트코인, 2013~2016년까지는 25비트코인, 2017~2020년에는 12.5비트코인씩 발행된다. 제한된 공급은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유통수단으로서의 부적격 사유에 해당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마켓워치는 1100달러짜리 TV를 팔아 벌어들인 1비트코인이 TV를 팔았을 당시엔 1242달러였으나 며칠 만에 1094달러로 떨어졌을 경우 비트코인을 원하는 경제주체는 없다는 예를 들기도 했다. 이는 반대로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갈 것을 예상한다면, 상품 구매 시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급팽창한 기존 통화량에 대한 우려, 각국 정부의 세원 발굴 노력을 회피하려는 일부의 노력이 비트코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키웠다는 게 비관론자들의 논리다. 이는 비트코인을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키프로스 사태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키프로스 정부는 지난 4월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예금에 대한 과세방침을 발표한다. 그러자 부자들은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이동시켰고, 덕분에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비트코인이 얼핏 금과 비슷해 보이지만, 금 본위제가 은 본위제에 밀리고 오늘날에는 정부가 발행하는 신용화폐에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빼앗긴 화폐의 역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대책 없이 비트코인이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비트코인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작성, 빠르면 연말께 그 내용을 공개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한편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비트코인을 개인 간 계산 단위로 인정하는 것은 과세에 나서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이 있다. 비트코인 거래에 따른 부작용은 선택을 수행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이며, 정부는 과세기반만 강화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논리다.
이는 비트코인 유통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에서 아예 거래를 금지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태국의 경우 비트코인을 통한 핫머니 유출입으로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것을 우려 거래를 금지했다.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40%를 차지하는 중국도 외환거래가 극도로 제한되는 특수한 환경 탓이 크다. 중국에서 개인은 연간 해외송금 가능액이 5만 달러로 제한돼 있지만, 비트코인은 이런 제약이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주용 부연구위원은 “비트코인의 장기적인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온라인상에서 현금과 유사한 형태의 금융거래를 수행하고자 하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가상통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기존 국가화폐의 온라인 상 보완재로서 가상화폐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비트코인은 그 과정에서 등장한 하나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