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은커녕… 2인자 자리는 독이 든 성배
북한의 2인자로 평가받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이 지난주 정국을 뒤덮었다.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였던 지난 2011년 12월 25일 금수산 기념궁전 추모 현장. 북한 관영방송에 의해 공개된 당시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공개석상에서는 처음으로 군복을 입고 등장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인민군 대장 계급장이 자랑스레 빛나고 있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처음으로 그에게 대장 칭호가 수여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김정일 시대였던 지난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김경희 당 경공업 부장(장성택의 부인)이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을 때도 장 부위원장은 승진 명단에서 제외됐던 것을 감안해보면, 이는 꽤나 의미 있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만 해도 국내외 유수의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 장 부위원장이 확고한 2인자이자 더 나아가 조카인 어린 지도자를 대신할 섭정의 당사자로까지 평가했었다.
그런 그가 돌연 실각했다는 소식이 지난 3일 전해졌다. 이를 처음 인정한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 국방부의 입장이 약간씩 다르지만, 장 부위원장의 신변에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엇보다 장 부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리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 정수길 당 행정부 부부장이 지난 11월 29일께 당 유일 영도체계 거부라는 반역 죄목으로 처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실각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해외에 파견된 장 부위원장의 측근 인사들도 속속 소환되고 있는 터라,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그가 이미 가택연금 중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실각설이 나오기 이전에 역설적인 징후는 있었다. <일요신문>(1125호)이 실각설이 제기되기 한 주 앞서 보도한 바와 같이 장 부위원장은 최근까지 자신이 이끌고 있는 당 행정부 산하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자신들의 측근들로 채워가며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북한 내부에선 그의 조직이 김정은의 국방위에 버금가는 권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기도 했다. 이는 정치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 위원장과 달리 선대 때부터 당과 군 영역에서 무역과 경제건설사업 경험이 풍부한 장 부위원장의 배경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 2인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던 장 부위원장의 행보를 김정은 위원장이 곱게 볼 리 없다. 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경제 영역에 있어서 급진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을 줄곧 주장하며 추진해가던 장 부위원장의 행보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그의 뒷배인 군부 강경파와 함께 선별적인 ‘모기장 개혁개방’을 주장해왔다고 한다. 개혁의 범위와 속도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보였고, 결국 김 위원장은 장 부위원장의 행보를 월권이자 반역으로 해석했다는 설명이다.
장성택 부위원장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견제는 이미 후계자 수업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됐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북한 내부와 접촉 중인 한 대북단체 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은 당에서 일을 시작한 2009년부터 당 행정부장을 맡고 있던 장성택 부위원장을 거치지 않고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보위사령부 등 보안 핵심기관들의 정보보고를 따로 받았다”며 “당시 보안기관 인사들은 이때부터 어떤 라인에 직보해야 할지 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거침없이 새력을 확장하는 장성택의 행보가 김정은(사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일까. 연합뉴스
일각에선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을 두고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장 부위원장의 실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장 부위원장은 지난 2003년 돌연 자취를 감춘 적이 있다. 당시 북한 지도부와 교류하던 남한 측 관계자들은 그의 갑작스런 실종을 의아하게 여겼었다.
그는 이 시기 닭공장(양계장)으로 보내져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 사실상의 숙청이었다. 당시 그 측근들 역시 요직에서 내쳐졌다. 이유는 ‘권력욕에 따른 분파행위’로, 지금의 사정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는 2006년 1월 설 연회에 다시 등장했다.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 다시 복권된 것.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8년 김일성 당시 주석의 명령으로 그는 당직에서 쫓겨나 제철소에서 2년간 사상교육을 받기도 했다. 당시는 자신의 부인이자 김 주석의 딸인 김경희와의 부부관계가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실각까지 따지면 그는 자신의 장인인 김일성 주석, 매형인 김정일 위원장에 이어 조카인 김정은 위원장까지 3대에 걸쳐 실각을 당한 셈이다.
이러한 전례를 비춰볼 때,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설 배경에는 완전한 결별보다는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3년 실각 이후 무너진 그의 측근 라인이 10년 만에 다시금 재건된 상황 속에서 이번 실각을 통해 그의 측근그룹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다시 복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11년 4군단장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던 김격식 대장 역시 지난해 인민무력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훗날 장 부위원장이 당직에 복귀하더라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장 부위원장의 실각 이후 북한 내 권력구도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 부위원장의 세 번째 복귀가 가능할지는 좀 더 지켜볼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