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 | ||
그의 만행이야 워낙 유명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최근 유럽에서 출간된 <나는 사담 후세인의 아들, 독재자의 대역이었다>라는 제목의 한 자서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인물이었는지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1987년~1991년까지 잠시 우다이의 대역으로 활동하다가 극적으로 망명한 라티프 야히아라는 이름의 한 이라크인이며, 우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나는 대역 그 이상이었다. 항상 주인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노예였다.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4년 반 동안 우다이의 ‘가짜’ 행세를 해왔던 라티프는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를 친다. 처음에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얼떨결에 일을 시작했지만 모든 것은 그가 생각한 대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대통령궁으로부터 전갈을 받았던 것은 지난 1987년 무렵. 당시 한창이던 이란과의 전쟁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중이었다. 후세인의 아들인 우다이가 자신을 직접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을 들은 그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우다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사실과 당시 성적은 형편 없고 포악한 성격으로 교내에 소문이 자자했던 ‘문제아’였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친분 관계라곤 전혀 없었기 때문에 왜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지 그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었던 것.
▲ 우다이의 ‘대역’이었던 라티프 야히아로 독일 TV 토크쇼에 출연한 모습. | ||
처음 우다이가 내세운 조건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그럴싸했다. “단순히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후세인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담의 아들’이 아니더냐. 경호원처럼 날 보호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어디에서건 나, 우다이로 살기만 하면 된다.” 부와 명예가 모두 보장되는 언뜻 듣기에는 구미가 당기는 계약 조건이었지만 라티프는 왠지 쉽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등 갖은 협박과 함께 7일 동안 감옥 신세를 진 후에야 그는 결국 자신의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혹독한 훈련과 함께 성형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그는 얼마 후 진정한 ‘제2의 우다이’로 다시 태어났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쉽게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다이와 쏙 빼닮았던 그는 마지막 관문인 후세인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를 보자마자 “알라신이 내게 셋째 아들을 선사해 주셨구나”라고 환영하던 그는 곧 “나를 성나게 하는 일은 하지 마라!”며 절대 복종을 강요했다.
처음 왕궁에서의 화려한 생활은 그에겐 ‘천국’과도 같았다. 수많은 경호원들과 미녀들에 둘러싸여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모든 부를 누릴 수 있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다이의 포악한 성질을 옆에서 보고 겪기 시작한 그는 점차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여성을 강간하고, 주변인들을 노예 혹은 동물 대하듯이 학대하거나 고문하는 등 그의 난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우다이의 기계공학 박사 학위는 사실 경호원이 그를 대신해 따준 것이었으며, 올림픽위원장임에도 불구하고 축구와 배구도 구분할 줄 모를 정도로 스포츠에 문외한인 그의 실제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이밖에도 라티프는 그의 자서전에서 현재 우다이가 불법으로 착복한 재산은 대략 30억달러(약 3조7천억원)에 달하며, 대부분 석유 밀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우다이를 대신해 수차례 암살 당할 위기에 처한 바 있으며, 그때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급기야 자신이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티프는 목숨을 걸고 이라크를 탈주했으며, 미중앙정보국(CIA)과 유엔 난민기구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를 통해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그는 사립탐정으로 활동하며 런던에 거주하고 있으나 “혹시 누가 날 암살할 계획이라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곳 서방에서의 생활도 지긋지긋하고, 그렇다고 또 고향으로도 돌아갈 수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