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파 지속… ‘오너리스크 넘어라’
한화그룹 김동관 실장이 징역형을 받은 아버지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회복기에 들어선 태양광사업 등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주목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보이는 까닭을 사회 분위기와 연결 짓는다. 대기업 사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총수 자제들을 승진시키거나 인사에서 부각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인사는 “경기침체기가 계속되고 있는 탓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대기업 사정이 이어지는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면서 “총수가 구속돼 있거나 사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등 어수선하지 않은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오너가 거론되는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총수가 구속돼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후계구도를 논한다거나 총수 자제의 인사를 언급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총수 자제들에 대한 언급을 피할 만큼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이들 황태자들의 할 일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속돼 있는 총수인 아버지를 대신해, 혹은 고령으로 모든 일을 일일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활동 폭을 넓혀야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탓에 사업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우선 재계 1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새해는 2013년보다 훨씬 바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새해에는 챙겨야 할 일이 많고 그만큼 권한과 책임이 막중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새해에는 삼성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지금보다 잦아질 것”이라면서 “지난 연말부터 단행한 삼성의 사업구조를 개편을 두고 이 부회장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이 부회장의 움직임이 세계 유수의 IT(정보기술) 기업이나 자동차 기업과 단순히 교류하는 차원으로 비쳤다면 새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활동 폭을 넓힐 것이라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새해 만 46세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1987년 만 45세에 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에 비하면 결코 이른 나이가 아니다. 이 부회장이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새해에 어떤 전략과 리더십을 발휘할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휴대폰에 치우친 수익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지도 관건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현대차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국내외 영업의 전반적인 사항을 챙기며 해외 출장도 수시로 간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의 기획·영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로도 올라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현대차의 실질 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물론 부품사업까지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현대차는 GM 등 미국 기업의 부활, 엔저 바람을 탄 도요타 등 일본 기업의 약진으로 이전의 성장세와 비교할 때 고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새해라고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비록 새해에는 글로벌 경기가 차츰 회복세에 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자동차 쪽만 놓고 보면 그리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북미시장이 회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새해 자동차업황 역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과 유럽이 불안 요소”라며 “유럽은 새해에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업황을 주도해야 할 중국 경기마저 회복 속도가 더디다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정몽구 회장은 지난 12월 23일 현대·기아차 해외법인장들을 전부 불러 모아 서울 양재동 그룹 본사에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몽구 회장은 환율 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화 예측과 선제적 대응,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을 강조했다. 해외법인장들에게 강조한 정 회장의 말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정 부회장이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잦은 리콜 사태로 품질경영에 흠집이 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키느냐도 정 부회장이 해결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삼성과 현대차의 황태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 조현준 효성 사장,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차장) 등의 새해는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가 구속 상태인 SK(최태원 회장)나 CJ(이재현 회장)의 황태자들은 나이가 아직 어려 논외로 치더라도 앞서 언급한 기업의 황태자들은 그룹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어 새해 행보가 꽤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2012년까지만 해도 유통업 급성장에 발맞춰 분주하게 움직였던 정용진 부회장은 2012년 말부터 2013년까지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노동조합 사찰·탄압 의혹 등을 받으며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급기야 지난 2월에는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이사직마저 각각 사퇴하며 모습을 감추다시피 했다. 더욱이 각종 규제와 소상공인들의 반발로 대형 유통업체의 성장세마저 주춤한 상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부자(父子)가 모두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효성그룹의 세밑 분위기는 우울하다. 검찰 주변에서는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중 누구를 구속시킬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효성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으나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나지 않은 상황에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효성그룹 현 상황으로 미뤄 볼 때 황태자 조현준 사장의 새해가 암울할 것이라고 짐작하기가 충분하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기소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모르는 상태지만 조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 조 사장이 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야말로 효성 3세 황태자로서 새해 계획은 무의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화그룹 황태자 김동관 실장의 새해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2월 2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김기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9년,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간이침대에 누워 재판을 지켜본 김 회장은 최후변론을 통해 “앞으로 좋은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 회장이 실형을 살게 된다면 김동관 실장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상당하다. 김 회장의 건강 상태가 실제로 많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설사 실형을 살지 않더라도 당분간 김 실장이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을 이끌어가야 한다.
1983년 생으로 이제 갓 서른을 넘은 데다 미혼으로 경영 이력이 일천한 김 실장은 태양광사업에 애착이 강하다. 재계에서는 한화가 태양광사업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도 김 실장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해에는 태양광사업이 바닥을 찍고 본격적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김 실장에게 위안거리다. 하지만 태양광사업 회복기에 오너리스크에 빠진 한화에서 김 실장이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사업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에서 본인의 직급에 맞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며 김 실장의 근황을 전했다.
아직 차장인 김 실장은 한화그룹 정기인사에서 승진할 공산이 크지만 한화그룹 상황이 상황인 터라 승진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화 관계자는 “오는 1월 말이나 2월이 돼야 인사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재판이 끝난 후가 되지 않을까 한다”며 “김동관 실장의 인사와 관련해서는 어떤 것도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역시 새해 행보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 부사장이 새로이 대표이사를 맡게 된 한진칼은 한진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설립한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다. 지주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다는 것은 후계구도 확립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조 부사장이 이제는 뭔가 보여줄 때가 됐다는 얘기다.
당초 연말인사 때 승진이 예상됐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 LG전자 부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등은 아예 승진 대상 명단에서 빠졌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여성 ‘상속자’들은…
대상 임상민 ‘수직상승’ 동양 현정담 ‘고속하강’
지난 연말인사에서 ‘황태자’들이 조용했던 반면 재벌가의 또 다른 ‘상속자’들인 딸들의 움직임은 비교적 활발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차녀 임상민 기획관리부본부장은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장도 상무에서 전무로 한 계단 올라섰다.
당초 승진이 유력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승진 명단에서 빠졌다. 2004년 현대상선 입사 이후 2005년 과장, 2006년 실장을 거쳐 2007년 전무까지 고속 승진한 정 전무는 이후 7년째 승진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정 전무를 승진시켜 사장단에 포함시킨다면 뒷말이 무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 소폭 인사만 단행, 다른 뜻은 없다”며 “최근 분위기와 관련 없으며 임원에게는 승진 연한이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재벌가 딸들의 승진 인사 중 눈에 띄는 것은 이서현 사장과 임상민 상무다. 먼저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가면서 이 사장도 삼성에버랜드로 옮겨갈 것이란 예측이 많았는데 그대로 실현됐다.
이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삼성 3남매 중 유일하게 승진, 언니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도 맡고 있어 자매가 삼성에버랜드에 모이게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최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5%)이다. 이서현 사장의 인사로 삼성 후계구도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임상민 상무의 승진은 대상그룹 후계 승계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임 상무는 대상그룹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최대주주(38.36%)다. 그러나 언니인 임세령 대상HS 대표와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 여전히 관심거리다. 임 대표는 현재 대상홀딩스 지분 20.41%를 보유, 임 상무에 비해 한참 낮은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1980년 생으로 새해 34세의 나이에다 미혼인 임 상무가 언니를 제치고 대상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을지 관심을 모은다.
반면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였지만 하루아침에 해임 위기에 처한 이도 있다.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다. 현 상무는 현재현 동양 회장의 장녀로 오랫동안 동양매직에서 근무, 경영·마케팅 능력을 인정받아왔으며 지금의 동양매직을 있게 한 주역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동양그룹이 무너지자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정성수 동양매직 법정관리인은 경영진에 현 상무의 해임까지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대상 임상민 ‘수직상승’ 동양 현정담 ‘고속하강’
임상민 대상 상무.
당초 승진이 유력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승진 명단에서 빠졌다. 2004년 현대상선 입사 이후 2005년 과장, 2006년 실장을 거쳐 2007년 전무까지 고속 승진한 정 전무는 이후 7년째 승진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정 전무를 승진시켜 사장단에 포함시킨다면 뒷말이 무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 소폭 인사만 단행, 다른 뜻은 없다”며 “최근 분위기와 관련 없으며 임원에게는 승진 연한이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재벌가 딸들의 승진 인사 중 눈에 띄는 것은 이서현 사장과 임상민 상무다. 먼저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가면서 이 사장도 삼성에버랜드로 옮겨갈 것이란 예측이 많았는데 그대로 실현됐다.
이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삼성 3남매 중 유일하게 승진, 언니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도 맡고 있어 자매가 삼성에버랜드에 모이게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최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5%)이다. 이서현 사장의 인사로 삼성 후계구도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임상민 상무의 승진은 대상그룹 후계 승계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임 상무는 대상그룹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최대주주(38.36%)다. 그러나 언니인 임세령 대상HS 대표와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 여전히 관심거리다. 임 대표는 현재 대상홀딩스 지분 20.41%를 보유, 임 상무에 비해 한참 낮은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1980년 생으로 새해 34세의 나이에다 미혼인 임 상무가 언니를 제치고 대상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을지 관심을 모은다.
반면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였지만 하루아침에 해임 위기에 처한 이도 있다.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다. 현 상무는 현재현 동양 회장의 장녀로 오랫동안 동양매직에서 근무, 경영·마케팅 능력을 인정받아왔으며 지금의 동양매직을 있게 한 주역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동양그룹이 무너지자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정성수 동양매직 법정관리인은 경영진에 현 상무의 해임까지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