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1753억 증액…
2014년도 예산안 처리과정에서도 ‘쩐의 전쟁’이 벌어졌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평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일 새벽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예결위 야당 간사인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예결위 간사로서 이러한 문제를 보고하게 돼 자괴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연 최 의원은 “특정 지역의 지하철 연장 사업이 있다. 신규사업으로 50억 원 편성 요구가 있었는데 국토교통위 동의를 못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른 지역의 지하철 사업 항목에서 50억 원 증액이 발견됐다”며 ‘불법증액’ 의혹을 제기했다. 이 발언으로 본회의는 3시간 40분가량 정회했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 의원의 폭로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한 것이었다. 최 원내대표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는 대구 지하철 1호선 연장이 오랜 숙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부의 반대로 수년간 진행되지 않았던 해당 사업은 정권이 바뀐 이후 지난 12월 24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신규사업 예산이 거절되자 계속사업인 대구지하철 1호선 예산을 전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던 것이다.
새누리당은 즉각 반박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김광림 의원은 “증액된 예산은 최 원내대표 지역구 예산이 아니라 대구시 예산”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대변인은 “해당 사업은 상임위인 국토위의 동의 과정에서 한 민주당 위원장이 5건의 별도 예산과 ‘딜’ 하자고 제시했고 이를 받을 수 없어 철회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최 원내대표 역시 “이번에 지역구 관련된 신규사업은 깨끗하게 포기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다음날 공식 일정을 불참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구 사업 하나가 유예된 셈이지만 최 원내대표는 이를 제외하고도 예산 증액 과정에서 청도 관하천 하천재해예방 20억 원, 청도 국립산림교육센터, 청도경찰서 민원실 신축 등 51억 5000만 원을 확보했다.
단일 사업으로 가장 많이 증액된 SOC 사업 역시 ‘동대구역 고가교 확장사업’으로 정부안보다 320억 원 늘었다. 해당 역이 있는 대구 동구는 예결위 소속 류성걸 의원과 친박계인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다.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친박계 실세에서 멀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지난해 K2 공군기지 이전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고 이번에 지역구 SOC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관철하며 원조 친박계로서의 위용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지역구인 류성걸 의원은 예산심사를 앞두고 “대구시에서는 3조 원만 달성하면 성공이라고 하지만 절대 거기에 만족할 수 없다. 이번엔 시에서도 깜짝 놀랄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친박계 의원들이 예결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도 “지역 편중은 문제가 있다. 체육단체장도 그렇고 공공기관장도 영남이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상황에 예산마저 편중되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당직자는 해마다 쪽지예산이 되풀이되는 이유에 관해서는 “(SOC 쪽지예산 관련해) 언론 비판은 잠깐이지만 지역에서는 영원하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계천을 만들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에 매진한 것은 가시적인 효과를 내야 유권자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다리를 놓거나 도로를 닦고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만큼 ‘잘 먹히는’ 의정활동은 없다”고 전했다.
국회의원들도 나름의 애로사항을 토로한다. 매년 정기국회가 되면 수많은 기업과 지자체 관계자들의 예산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기국회 기간이 되면 예결위 소속 의원 보좌진들은 “우리도 의원님이 어디 계신지 모른다”며 민원인을 일단 돌려보내는 일이 주 업무가 된다.
예결위에 참여한 한 의원은 “자꾸 쪽지예산, 밀실예산이라는데 올해는 호텔에서 몰래 한 것도 아니고 국회 회의장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며 “정부안과 비교하면 국회에서 손댄 부분은 1% 내외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