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의견 3~5명만 돼도 정부는 ‘본전치기’
지난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도중에 삭발을 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정부의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음 준비기일은 이달 15일에 열린다. 헌재법상 변론은 공개가 원칙이므로, 양 당사자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과거 2004년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때는 한 달 동안 7차례의 공개 변론이 열려 안희정·여택수 씨 등 측근 비리 관계자에 대한 증인 신문과 수사·재판 기록에 대한 증거 조사가 이뤄진 바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심판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제 결론이 어떻게 내려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헌법재판은 추상적인 조문을 근거로 하는 재판이다. 때문에 과거 헌법재판소가 어떤 선례를 남겼는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문제는 정당해산심판의 경우 우리나라에 선례가 없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독일과 터키에서 각각 1차례 인용됐을 뿐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이번 정당해산 심판은 재판관들이 특정 이론에 포섭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재판관 개개인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헌법상 정당해산 제도가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규정이 아닌 ‘헌법상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정당을 해산을 할 수 없는’ 소극적인 규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이석기 재판이 통진당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더라도 실제 정당해산이 이뤄지기에는 법리구성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구성을 따져봤을 때 기각결정이 나오더라도 통진당 측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정부 측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인용의견을 내지 않아 정당해산 신청이 기각돼 통합진보당이 유지되더라도, 인용의견을 내는 재판관이 3~5명 정도만 되더라도 정부로서는 ‘본전치기’는 된다는 셈이다. 이러한 전망은 현재 헌법재판관 구성이 과거와 차별화된다는 점에 기인한다. 우선 검사 출신이 2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으로 검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헌재소장이 된 박한철 소장은 대검 공안부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반정부 촛불시위 등을 직접 현장에서 겪었다.
특히 박 소장은 재판관으로 재임 중 소장으로 임명돼 잔여임기가 짧다. 헌법재판소장은 법적으로 재판관 중 한 명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2011년 재판관이 된 박 소장은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2017년에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것은 박 대통령이 퇴임 직전 헌재소장을 한 명 더 임명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한철 소장이 연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소장으로서는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검찰에서 박한철 소장과 같이 오랜시간 일하던 검사들은 “박 소장이 직에 연연해 사건을 다르게 판단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2년 9월에 새누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이 된 안창호 재판관도 검찰 내 공안부서 핵심보직인 대검 공안기획관 출신으로,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게다가 안 재판관은 재판관이 된 지 6개월 만에 검찰총장 인사검증에 동의한 사실이 밝혀져 법조계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임기가 보장되고 헌법상 중립성이 강조되는 헌법재판관인데도 청와대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던 행동은 헌법재판소 구성원들로는 충격에 가까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 재판관은 아직 이렇다 할 성향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헌재 내부에서도 박 소장 체제 출범 이후 재판관들의 성향이 드러나는 사건을 처리하지 않아 아직 ‘속을 알 수 없는’ 재판관들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조 재판관이 그 중 한 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은 진보적 성향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헌법재판관 중 유일한 여성이고, 노무현 정부 인물인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헌법재판관이 됐다는 정황에 의한 평가일 뿐, 이 재판관이 법원 재직 시절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했다거나 헌법재판소에서 뚜렷한 색채를 드러내는 입장에 선 적은 없다. 일각에서는 이 재판관이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을 처벌한 규정인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위헌의견을 냈던 점을 진보적이라는 평가의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형사처벌 법규가 명확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한 것에 불과해 이 사건을 근거로 이 재판관의 성향을 단정 짓기에는 무리라는 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외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진성 재판관도 법원에서 보수적인 성향의 법관으로 유명했던 인사로 알려져 있다. 반면 민주당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김이수 재판관은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재판관이 1980년 광주 31사단 검찰관으로 일하면서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재판을 했고, 군부정권에서 수상한 경력을 이유로 ‘민주당이 자살골을 넣었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군 복무 시절 단순히 주어진 일을 처리했을 뿐, 소신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오히려 김 재판관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64일간 구금생활을 하다 구속 취소되어 석방된 경험이 있으며, 부인인 정선자 씨의 경우 양심선언문 배포로 인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바 있는 등 과거 전력을 이유로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관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다. 이밖에 여야 합의로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과 양승태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된 김창종 재판관은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 치우친다고 보기 어려운 인사로 분류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향후 전망에 대해 “재판관들의 성향과 최근의 법조계 기류 등을 볼 때 일단 기각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반대의견이 3 이상 나와서 정부 측 체면을 살려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재판도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당 해산심판 청구가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으로 불거졌기 때문에 이 의원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통진당의 해산 심판건도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통진당은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심판 절차는 내란음모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한 판결이 최종 확정된 이후에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석기 의원이 무혐의로 판결날 경우 정당해산심판 건도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당해산심판 건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선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