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엘리제궁 안주인이 누구지?
최근 화두로 떠오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59)의 비밀 연애를 가리켜 프랑스 언론들이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여자들 틈에 끼어 있는 올랑드 대통령의 모습이 마치 70~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달라스> 속 남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은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한 세 명의 여인들이다. 현재 올랑드의 동거녀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48), 올랑드의 새 연인이자 비밀 연애 상대인 여배우 줄리 가예(41), 그리고 올랑드와 30년 동안 부부와 다를 바 없이 지냈던 전 동거녀 세골렌 루아얄 등이 바로 그들이다. 올랑드와 트리에르바일레가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번 스캔들을 가리켜 ‘불륜’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인해 조만간 엘리제궁의 안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고 점치는 프랑스 국민들은 앞으로 이 막장 드라마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비밀 연애 상대인 여배우 줄리 가예.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가예는 파격적인 올누드 등 과감한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AP/연합
<클로저>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엘리제궁에서 불과 137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들의 밀회는 늘 가예가 먼저 아파트에 도착한 후 뒤이어 올랑드가 경호원과 함께 도착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최근 10여 차례 이런 식으로 아파트를 방문했던 올랑드는 매번 새벽이 돼서야 아파트를 나왔으며, 한번은 경호원이 이른 아침 크루아상을 사들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었다.
스캔들이 보도되자 올랑드는 즉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스캔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던 그는 “이건 분명히 사생활 침해다. 고소하겠다”라고 말하는 한편,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거친다. 바로 우리들이 지금 그렇다. 힘들다”라며 속내를 밝혔다.
스캔들 보도 직후 대통령의 연인으로 떠오른 가예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던 것도 물론이다. 지금까지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가예는 파격적인 올누드 등 과감한 연기로 주목을 받았으며, 매춘부부터 동성애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데뷔작은 1993년작 <세 가지 색깔: 블루>였지만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었다.
아르헨티나의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인 산티아고 아미고레나(51)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으며, 지난 2006년 이혼한 후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좌파 성향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회당을 지지했던 그녀는 이른바 ‘캐비어 좌파’ 즉 우리말로 하면 ‘강남 좌파’에 속하는 여성이다. 열성적으로 사회당을 지지했던 그녀는 2012년 대선 당시 사회당 후보였던 올랑드의 대선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지원했으며, 대선 광고에 출연하면서 자연히 올랑드와 가까워졌다. 이 대선 광고에서 그녀는 “올랑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한다. 이런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런 올랑드에게 매우 감동을 받았다. 그와는 무슨 일이든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프랑스 주간지 <클로저>가 게재한 파파라치의 사진. 올랑드로 추정되는 남성이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여배우 가예의 아파트에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 보도로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던 그녀의 항변은 결국 ‘모두 진실’이 되고 만 셈. 이미 오래 전부터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파리 시내를 떠돌고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이를 추측할 만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가예가 임신 4개월이라는 소문도 불거졌다. ‘라 릴’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블로거가 트위터를 통해 주장한 것이다. 그는 “뉴스 전문 채널인 M6의 기자가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이라면서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트리에르바일레가 둘 사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파리를 온통 떠돌던 소문인 데다가 <파리마치>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녀가 과연 이 소문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르 파리지앵>은 트리에르바일레의 친구의 말을 빌려 올랑드가 <클로저>의 폭로가 있기 하루 전날인 9일 밤 이미 트리에르바일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엘리제궁의 한 소식통은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익명의 이 소식통은 “트리에르바일레는 올랑드의 외도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변호사를 고용해서 잡지의 폭로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섭게 화를 냈다”며 전혀 상반된 주장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스캔들 보도 직후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던 트리에르바일레가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실제 병원에 누워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뷰를 했던 그녀는 “올랑드가 하루빨리 입장을 명확히 해준다면 모든 걸 용서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그녀가 병원에 입원한 동기마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트리에르바일레의 바람과 달리 이미 퍼스트레이디 자리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당 원내대표인 프랑수아 레브사망은 “더 이상 퍼스트레이디는 없다. 끝났다”라고 말했다. 사실 법적으로 부부 관계가 아닌 만큼 올랑드가 결별을 선언할 경우 트리에르바일레는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짐을 싸서 엘리제궁을 나와야 한다.
스쿠터를 타고 밀회장소로 향하는 올랑드의 모습을 패러디한 게임.
그렇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이번 스캔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공인의 사생활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사실 ‘대통령의 외도’가 낯선 일만은 아니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스캔들이 불거진 까닭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가령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정부였던 안 팽조와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딸 마자린까지 낳는 등 이중생활을 했다. 1994년 혼외정사 사실이 발각된 후에도 미테랑은 떳떳했으며, 이런 대통령을 바라보는 프랑스 국민들은 ‘개인의 사생활이다’라며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이밖에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총리 시절 한 여성 언론인과 불륜 관계를 가진 바 있으며, 올랑드의 전임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역시 취임 직후 부인과 이혼하고 모델 겸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와 재혼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이런 까닭에서일까. 스캔들이 터지자 올랑드의 지지율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여성들의 지지율은 지난달 23%에서 26%로 상승했다. 또한 여론조사 기관인 IFOP의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7%가 ‘개인 문제’라고 답하면서 쿨한 반응을 보였으며, 응답자의 89%는 올랑드가 트리에르바일레와 헤어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비밀리에 스쿠터를 타고 밀회 장소로 향하는 올랑드의 모습을 패러디한 비디오 게임도 등장했다. 이 게임의 목표는 올랑드의 스쿠터를 마우스로 조정해 파파라치, 루아얄, 트리에르바일레 등의 장애물을 피해 무사히 가예의 아파트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게임은 인터넷에 올라온 지 불과 며칠 만에 7만 3000건이 공유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올랑드에게 과연 이번 스캔들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 “나의 정치적 멘토는 미테랑 대통령이다”라고 외치면서 말투, 걸음걸이, 스타일까지 흉내 냈던 그가 결국 사생활 스캔들까지 미테랑을 본받은 격이 되자 프랑스 국민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루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정치가 모처럼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해졌으니 정치 뉴스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