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의 상황을 반영한 듯 ‘사스(非典)를 이기자’는 플래카드가 걸린 채 대학문이 닫혀있다. 오른쪽 아래 사 스의 공포에도 불구, 사랑을 확인하는 두 남녀의 포옹이 새삼 눈길을 끈다. | ||
이곳에 본격적으로 사스의 공포가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초부터다. 한국 유학생 1백 명 정도가 실습하는 톈진중의대학 부속병원에서 사스환자 3명이 입원해 그중에 1명은 죽고, 2명은 전염병 전문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4월3일에는 톈진사범대학 한국 유학생이 사스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극도의 공포감이 일기 시작했다.
이 유학생은 단순감기로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중국 전체에 사스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한국인 사회는 급속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곧바로 학교당국을 찾아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했지만 학교 당국은 발뺌만 하고 있어 확인은 불가능한 상태.
하지만 수업중에 학교측의 입장을 알지 못하는 교수가 사스환자가 있다고 밝히는 등 소문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유학생들은 급속히 동요했고, 수업에 대해서 비교적 자유로운 어학연수생을 필두로 서서히 중국 탈출이 시작됐다.
톈진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난카이취(南開區) 수앙펑다오(雙峰道)와 완더좡따지에(萬德莊大街) 등의 골목은 얼마전까지 5천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톈진의 한국인 거리다.
난카이대학은 물론이고 톈진대학, 사범대학, 중의대학 등이 자전거로 10분여 거리에 있어서 유학생들이 집중해 한국인 거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십 곳의 한국음식점을 포함해 PC방, 세탁소 등 중국말 한 마디 못해도 생활이 가능한 곳.
역시 이곳도 사스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약 2km의 반경에 있는 한국인 거리 가운데 국내 동포들이 수십가구 살고 있는 지아인리(佳音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이미 환자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들 주택지구는 입구를 막고, 차량이나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또 단지의 감염을 두려워하는 아파트들은 각기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스 확산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이미 한국인 거리는 위축될 대로 위축됐다. 올 초 7백 명이 입학했던 톈진대학의 어학연수 과정에는 이제 1백여 명의 학생만이 남아있을 뿐 대부분의 학생이 귀국했다. 실제 환자가 발생했던 난카이대학을 비롯해 다른 대학 등도 마찬가지.
▲ 사스로 인해 굳게 닫힌 톈진대학(위)과 중의대학(가운데) 의 정문. 난카이대학(아래)은 정문을 막고, 웨이진루문을 통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다. | ||
또 오는 5월22일로 예정된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는 톈진중의대학 유학생 옥광민씨(29)는 “집에서 걱정을 하시지만 학교측이 아직까지 졸업시험의 연기를 발표하지 않아서 일단은 그때까지는 남아있어야 하는 입장이다. 일반 재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9월까지 연장해줘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간 상태”라고 말했다.
중국의 유학생들 주변에서는 이번 사스로 인한 또다른 세태를 양산시키기도 했다. 이른바 유학생들의 양극화 현상이 그것. 이곳에서도 평소 경제적 여유를 한껏 부리던 유학생들은 사스 소동이 일어나기가 무섭게 호들갑을 떨며 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국내 가족들로부터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빗발같은 전화를 받은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짐을 싸기 일쑤였다. 어학 연수생 등 수업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는 일부 부유층의 ‘관광성 유학생’들은 어김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반면 형편이 어려운 고학생들은 남모르게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큰 마음을 먹고 준비해 온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다시 올 수 있을지를 기약할 수 없는 데다, 사스의 영향력을 파악하지 못해 아직까지 중국에서 버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유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각종 기금을 지원받아 중국에 온 이들도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특히 아이들을 동행하고 온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에 돌아갈 경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할 것이 뻔하다며, 자녀 스스로 귀국을 원하지 않는 예도 많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적지 않은 상인들은 갑작스런 혼란에 빠졌다. 임대료를 비롯해 종업원 월급 등 평소 지출 비용은 고스란히 들어가지만, 손님은 갑자기 줄어들어 수입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중국인들이 많이 찾던 음식점들은 절반가량 손님이 줄어 그나마 나은 편. 호프집, PC방 등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시설은 손님이 평소의 10∼20%대로 급감했다.
▲ 최근 환자가 발생해 외부인이나 차량의 단지 내 진입을 금지한다는 안내가 붙은 지아인리 정문. 이곳은 아직까 지 한국인 수십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 ||
사스의 여파는 생산공장이나 현지 사무실을 둔 우리 기업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톈진의 주요 외국기업이 집중한 난징루(南京路)의 궈지따샤(國際大廈).
대한항공을 포함해 신한, 기업은행 등은 물론이고 한진해운 등의 현지 사무실이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최신식 빌딩으로 비교적 안전하지만 5월7일부터 건물 내 식당을 폐쇄하는 등 예비조치가 시행되면서 입주기업들이 큰 곤란을 겪고 있다.
한진해운의 조성훈 과장은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누어주는 등 보호책은 물론이고, 외부 영업 활동의 축소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펴고 있다. 중국측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는데,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환자가 발생할 경우 중국 당국에 의해 건물 전체가 폐쇄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재택근무 전환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한 대비책을 세워 두고 있다고 말했다.
톈진은 5월4일 현지에서 한중합작 악기 공장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가 폐렴으로 입원해, 한국 언론에 사스 추정환자로 보도되어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김씨가 단순 폐렴환자로 확인돼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중국에서 돌아간 사람들 가운데 유사환자가 발생한 점을 들어서 특별히 주의하고 있다.
또 시 정부가 단체활동을 금지시키자 한인교회 등 한국인 모임은 구역예배 등으로 방식을 바꾸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종교활동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동문회 등 친목 모임도 현저히 축소되었다.
조창완 중국 전문 프리랜서 chogaci@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