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모 송영인 회장이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방침에 대 해 “잘못된 일”이라며 비판했다. | ||
“국정원을 폐지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국사모가 발끈하고 나섰던 것이다. 국사모는 “어떻게 한나라당에서 국정원을 폐지하자고 주장할 수 있느냐”며 한나라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한나라당도 주춤하는 분위기다.
국정원 폐지론을 계기로 불거진 한나라당-국사모의 갈등은 앞으로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였던 국사모와 한나라당이 처음 충돌한 것은 지난 5월 초.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처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정원 폐지론을 당론으로 정하면서부터. 한나라당은 국정원장으로 고영구 변호사가 내정된 지난 3월부터 불만을 표출해왔다. 고 변호사가 ‘좌익 성향’을 띠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국회청문회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고 변호사를 차기 국정원장으로 임명하자 한나라당에서는 발끈했다. 여기에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임명되자, 급기야 한나라당은 ‘국정원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국정원 폐지 당론이 정해지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당대표 경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의원들 사이에서 ‘국정원 폐지론’은 화두로 떠올랐다.
강재섭 김덕룡 김형오 이재오 의원 등은 국정원 폐지론에 반기를 들었다. 반면 최병렬 의원은 찬성했고, 서청원 의원은 입장을 유보했다. 이처럼 한나라당 중진급 의원들 상당수가 당론으로 정해진 ‘국정원 폐지’ 방침에 반대하고 있는 것.
또한 국사모에서도 국정원 폐지 방침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국사모에서 한나라당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 것. 최근 송영인 국사모 회장은 라디오 ‘평화방송’에 출연, “국정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국정원을 폐지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송 회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방침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송 회장은 “국정원이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만 고치면 된다”며 “국정원을 해체하지 말고 법 테두리 내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국정원은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다”며 “대통령이 국정원에 초법적인 활동을 지시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문했다.
송 회장은 한나라당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집권경험이 있는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해체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난했다.
▲ 폐지론을 주장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 ||
당시 이종찬 국정원장은 국정원 2∼3급 간부 21명을 직권면직했다. 이에 이들 21명은 곧바로 국사모를 결성, ‘직권면직 처분에 대한 명예회복’에 나섰다. 직권면직 사유에 대해 국사모 회원들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직권면직된 21명 가운데 17명이 영남지역 출신들이라는 것. 따라서 “특정 지역 출신 간부들을 몰아내기 위해 직권면직 조치가 취해졌다”는 게 국사모측 주장이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사모 송 회장은 지난 2000년 4·13총선 당시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서울 종로에서 맞서려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다.
반면 국사모는 한나라당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심지어 국사모가 한나라당의 ‘사설 정보팀’이라는 말까지 여의도 정가에 공공연히 나돌았다. 특히 민주당에선 “국사모와 각별한 관계인 정형근 의원이 국사모 일부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지원해주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8·8재보선 당시 정 의원이 제기했던 ‘민주당 한화갑 대표 8월 방북 추진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몽준 의원의 10월 제주도 만남설’ 등의 출처가 국사모였다는 것.
하지만 이번 국정원 폐지론이 제기되면서 정형근 의원에 대해서도 국사모는 강하게 비난했다. 송 회장은 “10년 이상 국정원에서 국내 정보를 담당했던 정형근 의원까지 국정원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면 안 된다”라며 밝혔다.
국정원 사무실로 사용하다 발각된 ‘국회 529호실 사건’과 ‘언론 문건 사건’ 등에 대한 정보를 한나라당에 처음 제공한 것도 국사모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국정원 폐지 방침이 불거지면서 국사모는 상당히 격앙돼 있다. 어찌 보면 국사모 회원 입장에선 ‘친정’이나 마찬가지인 국정원 폐지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차원에서 국정원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국사모측 주장이다.
송 회장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 정보 기능을 축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와 같이 집권초기에는 개혁을 명분으로 국정원 부서를 없애겠지만 1년만 지나면 다시 부활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국정원의 정보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청와대에서도 깨달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한나라당은 5월중으로 국정원 폐지를 추진한다는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신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9월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국사모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