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노무현 대 통령.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의 무가지 살포를 언급했었다. | ||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전 <조선일보> 무가지 살포’ 발언으로 양측은 한때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측의 자세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듯 아연 돌변했다.
오히려 기자의 질문에 “별 문제도 아닌데…”라는 반응을 보이며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해 한껏 의아심을 자아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서 시작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월1일 MBC <100분토론>에 참가해 “<조선일보>가 대선 당일날 정몽준 후보와의 공조파기 내용을 담은 신문을 무가지로 엄청나게 뿌렸다”고 말했다.
이에 자극받은 <조선일보>는 “신문사 직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을 지면에 실었다. 한편으로는 ‘<조선일보> 사원 일동’ 명의의 항의서한을 노 대통령 앞으로 보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강하게 대응할 뜻을 내비쳤다.
청와대도 투표 당일날의 제보와 ABC협회의 실사를 거쳐 맞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양측의 태도가 돌변했다. 사태가 불거진 지 3주가 지나고 있지만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는 것.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며 “청와대의 반응에 따라 향후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는 강경 일변도의 종전 자세에서 한발짝 물러난 모습. 조선일보측은 사건이 불거진 당시에는 사실 해명뿐 아니라 노 대통령의 언론관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신문은 4일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의 주장을 인용해 “노 대통령의 언론피해망상증은 심각한 수준이다”며 강공을 퍼부었다. 심지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응분의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피력해 왔다.
청와대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당장이라도 실사를 벌일 것처럼 요란을 떨더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입장을 정리중이다. 내부 합의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ABC협회의 부수 체계는 공식적인 통계가 아니라 신문사로부터 통보된 수치를 보고서에 담는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무가지의 경우 언론사의 관행이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가 살포됐는지는 확인이 쉽지 않다. 때문에 실사를 벌인다 해도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언론계에서는 일단 일파만파로 치닫던 양측의 행동이 갑작스레 변한 데 대해 의아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상 초유의 ‘무가지 파동’이 이 정도쯤에서 흐지부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문업계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양측 모두 특별한 대응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는 서로를 자극해봐야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암묵적인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일보>는 무가지 문제를 들춰서 득될 것이 없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5월2일 협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신문고시 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신문사가 무가지를 뿌릴 경우 불공정 행위로 간주해 정부가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날 합의된 내용의 골자.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위원회의 결정에 힘을 싣고 있다. 노조는 6월을 신문 개혁의 달로 선정해 집중적인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신문시장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로 무가지를 없애자는 의견이 많다”며 “현재 자문단을 통해 투쟁을 위한 제도적, 법적 근거를 마련중이다”고 설명했다.
여러모로 <조선일보>에 도움될 게 없다. 때문에 <조선일보>가 민감한 사안인 무가지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방향을 선회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의 경우도 국가 기관으로써 이 같은 문제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게 위엄이 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가지 문제가 틀어질 경우 메이저 언론사와의 전면전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양측의 태도 변화 배경에는 모종의 합의가 뒤따르지 않았는가라는 의심마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언론계의 전반적인 견해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관계로 미뤄볼 때 양측이 합의를 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오히려 섣부른 공격은 자칫 역공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만큼 지금은 탐색전 상태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