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억 횡령’ 판결났는데 왜 이리 조용한가
2012년 대선 당시 BBK 사건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캠프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미국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로 옵셔널 피해자들은 김경준 씨가 다스로 송금한 140억 원을 찾아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김 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2월 자신이 스위스 계좌에 예치해놨던 140억 원을 다스로 송금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다스가 소송을 취하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김 씨가 돈을 보낸 까닭에서다. 당시 김 씨는 다스에 굳이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미국 법원과 검찰은 해당 돈은 다스가 아닌 옵셔널 피해자와 소유권을 가려야 한다는 해석을 내린 상태였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김 씨가 돈을 송금한 직후 김 씨 누나 에리카 김이 국내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에리카 김은 불기소처분으로 면죄부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무수한 억측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입을 닫은 채 미국에 머물던 에리카 김이었기에 갑작스런 귀국은 세간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정치권에선 ‘다스 소송 취하→김 씨 송금→에리카 김 귀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옵셔널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스가 그 상대방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소송을 통해 그동안 다스와 관련해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의 실체가 벗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김 씨의 송금과 에리카 김 귀국에 얽힌 미스터리는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차명 보유설 등이 재판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뤄질 전망이다. 옵셔널 피해자 측 역시 다스와 이 전 대통령 상관관계에 대해 광범위하게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다스는 나와 상관없는 회사”라고 일축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이나 친이계 인사들조차 사석에선 “솔직히 다스에 대해서만큼은 이 전 대통령과 그 일가 이외엔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도 이 전 대통령 해명을 믿어야할지 긴가민가한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으로선 옵셔널 피해자들의 타깃이 다스로 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다스로 보낸 140억 원뿐 아니라 차명 보유 의혹까지 도마에 오를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다스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4대강 사업과 같이 정책적 측면에서 다뤄질 것이 아니라 순전히 MB 개인 문제이기 때문”이라면서 “아마 이 전 대통령은 물러난 뒤 다스가 다시 거론되는 것을 가장 피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확실히 준비했을 것이란 추측과 맞물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다스나 BBK는 정부 차원에서 나서지 않는 이상 파헤치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다. 스위스 계좌 송금이나 미국 연방검찰 수사 등은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고, 에리카 김 귀국 및 검찰 수사는 MB 정권 당시 사정라인과 여권 핵심부들을 샅샅이 훑어야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또 비상장사인 다스의 자세한 사정을 알기 위해선 금융당국이나 국세청 등이 동원돼야 한다.
반대로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다스를 파헤치는 게 가능하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현 정권이 차명 보유설을 포함해 다스를 문제 삼을 경우 이 전 대통령은 곤혹스런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와 핫라인 구축에 나섰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의 이 전 대통령 측근은 “당선이 유력했던 박 대통령 측에 보험을 들기 위해서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여러 문제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았는데 다스 문제가 핵심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대선에서의 지원도 약속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가기관 대선개입이 당시 청와대 묵인 하에 이뤄졌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캠프 사이에 어떤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대선을 돌이켜보면 청와대가 박근혜 캠프를 지원사격하는 듯한 정황은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경찰의 성급한 수사 발표로 논란을 빚은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당시 야당은 박근혜 캠프가 경찰과 ‘내통’하고 있다며 공세를 편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이 전 대통령 측 제안을 굳이 거부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는 전언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한 친박계 인사는 “이 전 대통령 측이 민감한 자료들을 가지고 접촉했던 것은 팩트(사실)다. 대선을 앞두고 절대 공개돼선 안 될 것도 있었다. 마지못해 이 전 대통령 측과 거래를 한 측면도 있지만 우리로서도 손해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선거에서 도움도 받았다”면서 “이 전 대통령 퇴임 후를 확실히 보장해주면 끝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 대부분 여기에 공감했다. 다스의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권에서 다스 문제를 꺼낸 정치인은 전무하다. 최근의 미국 항소법원 판결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친박 중에선 ‘다스 저격수’라고 할 만한 인사들이 제법 있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2007년 경선에서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차명 보유 의혹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또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싱가포르 이전설’, ‘이시형 다스 취업’ 등을 거론하며 비판적인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었다.
한편, 정치권에선 김경준 씨 거취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씨의 형기 만료일은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이다. 김 씨는 MB 정부에서 사면되길 기대했으나 이뤄지지 않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씨 사면을 추진하려 했으나 정치적 위험이 너무 커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의 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 전 대통령이 차기 정부에서 사면을 약속했을 것이란 소문은 이미 2012년 대선 때 여의도를 중심으로 흘러나온 바 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캠프 간 맺은 이면 계약에 김 씨 사면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김 씨의 한 지인은 “김 씨는 지난 정권에서 사면이 되지 않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바꿔 먹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사면이 이뤄져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BBK 사건이란
스위스계좌 140억 놓고 김-다스-옵셔널 핑퐁게임
BBK 사건은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수도 없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 내용이 워낙 복잡해 전문가들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관련 소송을 진행했던 미국 연방법원조차 ‘극도로 복잡한 사건’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건은 김경준 씨가 1999년 4월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2000년 2월 김 씨는 BBK와 같은 사무실에 이 전 대통령과 함께 LKe뱅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김 씨는 2001년 코스닥 상장사 옵셔널캐피탈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김 씨의 ‘작전’은 시작됐다. 김 씨는 BBK가 옵셔널에 투자할 것이라고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리며 주식시장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김 씨가 BBK 자산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BBK의 투자자문사 등록은 취소됐다.
그러자 김 씨는 BBK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옵셔널 유상증자대금 중 320억 원을 빼돌렸다. 이로 인해 옵셔널이 상장폐지돼 5000여 명의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다스 역시 옵셔널에 190억 원을 투자했지만 50억 원을 제외한 14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옵셔널 피해자와 다스가 김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삼자간 얽히고설킨 법정공방은 김 씨가 미국 연방검찰에 체포되기 직전인 2003년 140억 원을 스위스 은행에 예금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돈의 소유권을 놓고 김 씨, 다스, 옵셔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말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 씨가 몰수당한 자산 370억 원은 옵셔널로부터 횡령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 씨 스위스 계좌에 들어있는 140억 원에 대해 옵셔널 피해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김 씨는 2011년 2월 돌연 140억 원을 다스로 송금했다. 김 씨 누나 에리카 김이 국내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고, 다스가 소를 취하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옵셔널 피해자들은 다스로 송금된 140억 원에 대해 소를 제기했고, 지난 1월 15일 사실상의 최종심인 항소법원은 옵셔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동]
스위스계좌 140억 놓고 김-다스-옵셔널 핑퐁게임
2007년 ‘BBK 사건’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소환되는 모습. 임준선 기자
김 씨는 2001년 코스닥 상장사 옵셔널캐피탈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김 씨의 ‘작전’은 시작됐다. 김 씨는 BBK가 옵셔널에 투자할 것이라고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리며 주식시장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김 씨가 BBK 자산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BBK의 투자자문사 등록은 취소됐다.
그러자 김 씨는 BBK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옵셔널 유상증자대금 중 320억 원을 빼돌렸다. 이로 인해 옵셔널이 상장폐지돼 5000여 명의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다스 역시 옵셔널에 190억 원을 투자했지만 50억 원을 제외한 14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옵셔널 피해자와 다스가 김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삼자간 얽히고설킨 법정공방은 김 씨가 미국 연방검찰에 체포되기 직전인 2003년 140억 원을 스위스 은행에 예금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돈의 소유권을 놓고 김 씨, 다스, 옵셔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말 미국 연방법원은 김경준 씨가 몰수당한 자산 370억 원은 옵셔널로부터 횡령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 씨 스위스 계좌에 들어있는 140억 원에 대해 옵셔널 피해자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김 씨는 2011년 2월 돌연 140억 원을 다스로 송금했다. 김 씨 누나 에리카 김이 국내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고, 다스가 소를 취하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옵셔널 피해자들은 다스로 송금된 140억 원에 대해 소를 제기했고, 지난 1월 15일 사실상의 최종심인 항소법원은 옵셔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