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전복 기도’ 20년 구형 놓고 옥신각신
지난 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석기 의원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검찰은 이날 이 의원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 사건이 세간에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3년 넘게 내사를 벌여온 사건을 ‘왜 하필 이 시기에 공개를 했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과 검찰이 이 의원의 의원실 등 18곳을 압수수색하면서 공개수사로 전환한 지난해 8월은 국정원이 대선개입 사건으로 수세에 몰리던 시기였다. 즉,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인정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마저 훼손될 상황이었다.
이석기 의원 등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는 결심공판에서 “재판 시작 전부터 언론에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고 수사상황이 연일 보도되면서 여론재판. 종북으로 몰아갔다”면서 “진보당은 이미 해체된 정당으로 만들고 진보당과 무관한 인사들까지도 종북으로 몰리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국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불거진 정권의 정통성 논란과 국정원 해체 여론도 종북몰이에 힘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검찰과 국정원은 공개수사 한 달여 만인 지난해 9월 26일 수사를 마무리 하고 이례적으로 당시 수원지검장이던 김수남 검사장이 직접 나와 수사결과를 대대적으로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권에 힘을 실어주면서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김 검사장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하며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자리는 이전에는 검찰의 전통적인 요직인 빅4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없어지고 특수4부가 생기면서 검찰 조직 내에서 자연히 ‘원톱’으로 올라섰고 김 검사장은 이런 서울중앙지검의 첫번째 수장이 됐다. 김 검사장은 최재경 인천지검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지만 최 지검장이 내란음모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김 검사장을 넘어서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으로 공이 넘어간 내란음모사건은 수원지법 형사12부 김정운 부장판사에게 배당됐고 재판부는 내란음모 사건을 제외한 다른 사건들을 모두 다른 재판부에 넘기고 매주 4회씩 집중심리로 재판을 진행하는 등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진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한 획을 긋게 될 내란음모사건은 4회 공판준비기일과 45회 공판기일 동안 제보자 등 100여 명의 증인을 심문하고 30여 개의 녹음파일 청취, 압색물과 증거조사 등을 실시했다.
이석기 의원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변호사가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검찰은 공판과정에서 북의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론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이 전쟁 상황이 오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고 기도했다가 발각됐다고 주장했다. RO는 총책인 이석기와 지휘부가 있고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에 동조하고 북한의 대남투자 3대과제를 활동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세포모임이 형성돼 있으며 남부권역, 동부권역, 중서부권역, 북부권역, 중앙팀으로 조직이 세분화돼 있고 구체적 군사행동을 권역별로 지시한 사실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10일과 12일 경기 광주 곤지암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강당에서 열린 2차례 회합은 군사적 방법과 무장투쟁 혁명을 결의하고 구체적으로 RO 조직 정비방안과 군사적 행동 방안을 모의한,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회합으로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하혁명조직의 수장은 이석기 의원이고 그 근거로 이 의원이 곤지암 회합에서 실망감과 불쾌감을 드러내며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을 공개적으로 하대하고 질타한 일을 들었다. 또한 조직을 지키기 위해 회합 시간과 장소 등을 점조직을 통해 비밀리에 전파하고 참석자 모두 휴대폰을 끄고 모임에 참석했으며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주차장 아닌 곳에 차를 주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 등이 실제 북한과 연락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이 의원 등이 국내외 인터넷 연결과 주요 방송국 방송 송출을 담당하고 있는 KT혜화지사와 평택LNG기지 등을 구체적인 타격대상으로 거론하면서 그 방법으로 인터넷 총기제조법과 폭탄 제조 사이트 등을 지목했다”면서 “행위의 실행 가능성과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내란선동·음모가 명백하다는 유죄를 확신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오랫동안 조사한 사건이다. 검사는 기소·불기소밖에 없고 판사는 유죄·무죄밖에 없는데 내가 판사라고 가정해서 생각해보면 유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이번 사건 결과를 전망했다.
지난해 8월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사무실에서 압수물품을 가지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내란음모죄 성립에 대해서는 검찰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서울지역 검찰청 소속의 한 검사는 “북한과의 연락이 실제 없었고 이 의원 등이 타격대상으로 KT혜화지사와 평택LNG기지를 거론했다지만 이들이 실제 이곳을 염탐하거나 한 정황이 나오지 않는 한 내란음모죄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는 내란음모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이석기 의원은 허황된 꿈을 꾸는 몽상가로 보인다”면서 “솔방울로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것이 위험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 측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는 “20년간 성취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폐허를 만든 수사”라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RO를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지만 이적단체로 기소조차 못했고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검찰은 제보자 이 씨의 증언으로 RO가 실재하는 지하혁명조직이고 3인 모임이 RO의 세포모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씨 진술의 신빙성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은 RO는 그 명칭부터 가입절차, 활동내용까지 허위로 지어낸 것이라고 재판 내내 주장했다. 2010년 당시에는 조직명이 내일회였고 총책도 이 의원이 아니라 이용대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이었던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후 2013년에 RO로 명칭이 변경되고 총책도 이 의원으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4개월 동안 양측 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진행된 재판은 오는 2월 17일 법원의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재판부는 국민적 관심을 고려, 이례적으로 3일 열린 결심공판을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취재·보도의 자유 충족을 위해 법정 촬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윤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