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동체’ 간판 달고 선거에 관여?
2012년 7월 7일 문재인 의원(왼쪽)과 ‘협동조합 전도사’ 박원순 시장이 2012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해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협동조합난장한마당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문재인
사실 협동조합은 출범 이전부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무엇보다 여야 각 진영의 정치적 계산속에서 이 협동조합을 두고 주판알을 튕겼던 것. 핵심은 협동조합의 정치화 및 세력화. 야권보다는 여권 입장에서 더욱 민감하게 염려했던 대목이었다.
이에 여야는 합의에 따라 ‘협동조합이 공직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 관여금지 조항(기본법 9조)을 두었다. 또 지난해 법령 개정을 통해 올해 1월엔 ‘협동조합 임직원은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의원을 겸직할 수 없다’는 겸직금지 조항(기본법 44조 5항)을 신설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선 나름의 보호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실제 상황은 어떨까. 현재 정치권 인사들의 협동조합 활동은 무척이나 활발한 편이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경북 봉화 지역의 농산물을 생산해 유통하는 ‘봉봉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 중이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문교양 사업 목적의 ‘마들클래스 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은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바보주막’으로 유명한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이사진이다.
물론 앞서 열거한 정치권 인사들은 모두 원외라는 점에서 기본법 조항을 어긴 것은 아니다. 한때 정치권에 몸담았던 인사라도 의지와 목적, 순수성만 분명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출마하는 정치권 인사들의 경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시선이다.
윤여준 새정추 의장(왼쪽)은 ‘울림’ 이사장을,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해성 민주당 중동구 위원장은 ‘산만디사람들’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협동조합 모두 관련 인사들이 출마 선언 등 본격적인 정치 행보 직전 창립했다는 점, 일부 협동조합은 정치 교육 및 인재 양성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 등 분명 의심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감한 시점에 창립된 일부 협동조합이 경우에 따라 선거에 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우, 굳이 출마자들이 자신의 협동조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조합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자신의 지역에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을 설립해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많았다”며 “협동조합의 경우, 조합원 구성만 가능하다면 이전 법인의 경우처럼 별도의 출자금 없이 설립 가능하고 지역 밀착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하는 인사들도 ‘정치 오염’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문보경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물론 기본법상 협동조합이 선거운동에 나설 수 없으며, 협동조합 임직원 출신 출마자가 당선된 경우 6개월 내 직책을 포기해야 하지만, 문제는 이 조항으로 실제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현실에선 갖가지 수단과 편법을 동원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본분에 충실한 것이 맞다”며 “조합 임직원이 아닌 일개 조합원으로서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직접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협동조합의 정치관여 및 정치화 문제는 사실 협동조합의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협동조합이 정치적으로 편향된다면, 당시는 성장이 가능할지라도 정치권의 부침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못하고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협동조합 이전에 등장한 경제 대안체인 사회적 기업 중 편향된 정치적 성격을 띠던 곳들이 정권 교체 후 무너지는 사례가 빈번했던 이유다.
문보경 위원장은 “협동조합에게 중요한 것은 분명한 목적성과 그것을 구성하는 조합원들, 임원진들이 외부와 무관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결국은 자정할 능력이 있는 조합원 수준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c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