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당의장 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원내대표에 대해 이처럼 표현했다. 실제로 예비 경선에 출마했던 13명 후보들 중 정동영 신기남 두 후보를 제외하곤 모두가 출마의 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김근태 원내대표에게 존경과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말을 했다.
예비 경선이 끝난 직후 8명의 본선 진출 후보들은 저마다 직·간접적으로 김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호의적인 존경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정동영-김근태’ 빅매치를 무산시켰다는 당 안팎의 원성을 샀지만 정작 본선 진출 후보들 사이에선 ‘인기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김 대표가 ‘킹메이커’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로 의장 경선 주자들 사이에 ‘잘 보여야 될 사람’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정동영 후보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 당의장 선출 방식이나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를 놓고 정동영 후보 등 소장파 그룹은 김원기 공동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를 위시한 당 중진들과 심한 이견을 보여왔다. 그렇기에 정동영 신기남 후보 등 소장파 경선 후보들과 각을 세우고 나선 다른 후보들로서는 당 중진의 ‘지원’이 절실한 입장.
후보들이 그 상징적 대상 인물로 김원기 의장보다는 정동영 후보의 맞수로 거론됐던 김근태 원내대표를 꼽고 있는 셈이다. 김원기 의장의 경우 김 대표의 당의장 출마를 강력하게 희망했다가 김 대표의 불출마로 목소리에 다소 힘을 잃은 상태다.
‘김근태 카드’를 공식석상에서 제일 먼저 꺼내든 후보는 바로 이부영 후보다. 지난 4일 제주에서 벌어진 TV토론에서 이 후보는 ‘노무현-김근태-이부영’ 트로이카 체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재야 출신 개혁성향의 3인방이 우리당을 이끌어야 총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우호적 라이벌 관계였던 김 대표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표현한 셈이다.
공식석상인 TV토론 이전부터 장영달 후보는 김 대표와의 교감을 당내 인사들에게 역설해왔다. 같은 재야 출신에다 민주당 탈당파라는 이력서상의 교집합이 김 대표와의 우호적 연대를 자신하게 만드는 대목.
김정길 후보측도 “김근태 대표와 자주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힌다. 김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 우호적이지 않은 당 중진들이 김근태 대표와 김원기 의장을 중심으로 자신을 도울 거라 확신하고 있다.
김 대표의 주가는 합종연횡의 끈을 이어줄 수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8명 후보자들은 지난 4일부터 선거 전날인 10일까지 모두 한 버스에 탄 채 이동하며 같은 호텔에 머물고 식사도 한 곳에서 하게 돼 있다. 매일같이 ‘적과의 동침’을 하는 상태에서 드러내놓고 다른 후보와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정 후보의 독주를 견제하는 김 대표 같은 중진이 가운데서 연결고리를 놔줄 경우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는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간의 묘한 경쟁의식이 이번 당의장 경선에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렇듯 후보들은 저마다 김 대표와의 교감을 과시하며 잔뜩 기대를 부풀리고 있지만 정작 김 대표는 당의장 경선과 관련된 언급을 삼가고 있다. 큰 밑그림을 품고 있는 김 대표가 경선 후보자들의 순간적 손짓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당의장 후보들의 계속되는 공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김 대표의 속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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