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자택에서. 한병관 기자
[일요신문]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의 인터뷰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제는 정치로 넘어갔다. 그는 그간 정계 입문부터 은퇴까지의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움’과 현재 진보정치의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강 전 대표는 인터뷰 하루 전 있었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1심 유죄 판결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처음 밝히기도 했다.
―정계 은퇴 이후 현재 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우리 정치는 답보 내지 후퇴하고 있다. 국민들의 가치관이 너무 왜곡됐다. 자본주의, 돈벌이에 매몰됐다. ‘내가 희생하고 헌신해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답인데. 사실 이게 진보의 가치다. 위타성에서 오는 행복, 진보의 행복이다. 아직도 난 이 길을 확신한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현실을 봐라. 난 국회에서 호통만 치고 폭력에 공중부양까지... 내가 폭력의 대명사가 됐다. 난 지금 내가 부끄럽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진보 분열의 사태를 겪으면서 스스로의 객관성을 잃었다. 이건 사약이었다. 그런 것들을 국민 앞에 추태로 나타났다. 내 의정활동 8년이 무너졌다고 느꼈다.”
―많이 아쉽나.
“그렇다. 난 진보가 새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것이다.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가치를 이루지 못했다. 사실 지난 2011년 진보의 통합은 국민의 요구이자 시대의 요구였다. 그런데 통합되자마자 그런 추태를 부렸으니…. 당시 국민들은 통합진보당에 14%의 지지를 보냈지만, 내부의 패권성이 드러났고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앙에서의 내홍과 무관하게 통합진보당 내 지역 당원들은 매우 훌륭했다. 그래서 죄스럽고 안타까운 맘이었다. 내 가슴이 찢어졌다. 단식하면서까지 분당을 막고자 했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 현주소까지 온 거다.”
―현재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진보도 중도도 보수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 특히 진보는 당내 패권성 때문에 무너졌다. 더 못된 놈으로 각인됐다. 그러니 국민적 요구가 폭발한 거다. 그게 안철수에 대한 기대로 나타난 거다. 안철수 진영의 창당은 이러한 국민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그 실험이 성공 가능하다고 보는가.
“어떻게 하기 나름이다. 좋은 의도로 출발해도 생각 잘못하면 기존 정당 이기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안 좋은 의도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중간에 얼마든지 국민의 요구를 파악하고 깨달으면서 좋은 길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재다. 내가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무위무공(無爲無恐)이다. 허튼 짓 안하면 두려울 게 없다는 뜻이다. 신당도 그렇지만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난 안철수와 신당에 대해 평가할 위치고 아니고 자격도 없지만, 내 인생철학에 견줘 한마디 한 것이다.”
―어제(2월 17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1심 판결을 받았다.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받아 결국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오늘 트위터를 통해 (이석기 의원 유죄판결을) 처음 접했다. 당연히 우리 진보진영에서 나온 일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그런데 난 이석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평소에는 전혀 몰랐던 사람이다. 이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 되서야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았다. 그 이전엔 만난 적도 없다. 솔직히 재판 내용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못하고, 뭐라 말하긴 힘들다.”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던 강 전 대표는 잠시 깊이 생각하더니 과일 ‘감’에 비유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나가기 시작했다.)
“예전 촌에선 가을 즈음 방에 누워있을 때가 있다. 그때 슬레이트 지붕 위에 감이 떨어진다. ‘딱’ 소리가 나면 땡감이고, ‘철벅’ 소리가 나면 그건 홍시다. 소리를 듣고 대략 감을 구별했다. 그런 감(感)으로 얘기하자면, 이번 사건은 분명 간첩이나 내란 음모는 아니다. 녹취록을 대략 봤지만, 설령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성 없는 얘기들 아닌가. 여러 시국을 비춰보면 이 의원이 빌미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분명 그러한 건더기를 준 것이다. 왜 그런 식의 발언을 했을까. 전체 국민이 분노하고 규탄하는 상황 속에서 말이다. 왜 그런 짓을 했을지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으르렁 거리는 사자가 덮치려고 하는 데 거기에 걸려드는 행보를 한 것이다.”
―맘이 편치 않겠다.
“난 사실 (정계 은퇴 이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이석기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비유법을 쓰긴 했지만, 처음 언급한 것이다. 오늘은 정말 너무 안타까워서 내 양심상 이 사건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빌미가 되는 말을 했다고 내란 음모로까지 모는 이 시대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진보의 총체적 위기다. 진보정당에 미래는 있다고 보는가.
“내가 답할 상황은 아닌데(한참 뜸을 들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쉽지 않겠지만 철저하게 자기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원래 진보가 어렵다. 보수와 중도는 모순이 있더라도 티가 잘 안 난다. 하지만 하얀 백지에 터럭 하나 떨어져도 티가 난다. 진보가 그렇다. 보수보다도 훨씬 더 엄중한 도덕성, 양심이 요구된다. 쉽진 않지만 절망하진 말아야 한다.”
―정계 복귀에 대한 꿈은 완전히 접은 것인가.
“(웃음을 띠면서) 정계 복귀 꿈? 아직 접지 않았다. 나 요새 기도로 정치한다. 매일 아침, 국민을 위해 진보정당뿐 아니라 새누리당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상생의 정치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난 농사꾼이다. 농사로 정치한다. 내가 하고 있는 유기농 농사가 결국 상생이다. 흙 1g 안에 200만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그렇게 조화를 이룬 흙으로 열매를 가꾸고 그 열매를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제품으로 만들고 있다. 이만 한 상생의 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앞서 얘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강기갑하면 폭력 의원 낙인이 찍혀 있는데.
“밖에선 내가 정치를 깡패처럼했다고 하는데, 나 어느 누구도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 없다. 나와 총선에서 두 번 붙은 이방호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도 마찬가지다. 19대 총선 후 전화해서 밥도 먹고 그랬다(웃음). 정치엔 벗이고 적이고 원수가 없다. 다만 그때 내가 정도를 벗어나 울분을 참지 못해 행동한 것에 대해선 부끄러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내가 7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한 사람인데…. 화를 참으려고 손에 묵주도 꽉 쥐었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서민들이 느낀 분개심’이었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