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 적부터 허풍쟁이였다”
2월 20일자 <주간문춘>에 보도된 ‘가짜 베토벤’ 사무라고치 마모루의 실체에 대한 폭로 기사. 왼쪽의 눈을 감은 사람이 대리 작곡가 나가키 다카시다. 오른쪽은 그의 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
신화의 붕괴는 대리 작곡가의 양심선언에서 시작됐다. 도호가쿠엔대학 작곡과 강사인 니가키 다카시(44)는 <주간문춘>과의 인터뷰에서 “사무라고치는 악보를 쓸 수 없고 피아노 실력도 초보 수준이다. 18년 동안 그가 발표한 작품은 내가 대신 써준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리고 “20여 곡을 대신 써주고 받은 돈은 700만 엔(약 7300만 원)이었다”고 고백했다.
더 충격적인 건 사무라고치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는 폭로였다. 니가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귀가 안 들린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내가 만든 곡을 사무라고치가 듣고 의견을 표명한 적도 있다”고 강조했다.
파문이 거세지자, 사무라고치는 2월 12일 변호사를 통해 긴급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대리 작곡이 들키면 파멸이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지난 18년간 아내도 속이며 살아왔다”면서 “많은 사람을 배신하고 실망시킨 점, 마음 속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또 청각장애가 거짓이라는 폭로에 대해서는 “35세 때 완전히 청력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천천히 말하면 알아들을 때도 있을 정도로 청력이 회복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청력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후 사무라고치는 궁지에 몰리고 있다. 불신감에 이제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특별한 치료 없이 3년 전 청력이 회복됐다니 그야말로 기적이다. 학회에 발표해도 좋을 수준”이라며 비난했다. 인터넷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 해명이 더 황당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상가상, 그를 변호했던 변호사들도 사임을 표명했다. 이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거듭되는 거짓말에 변호사들조차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속속 사기극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사무라고치 고향 동창생들의 증언이 잇달아 공개됐다. 동창생들은 “사무라고치의 과거 행적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달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먼저 사무라고치가 시대의 총아가 된 배경에는 특이한 이력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4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10세 때 베토벤과 바흐 곡을 연주했다 ▲중고생 시절 악곡형식론, 화성법, 대위법, 관현악법 등을 익혔다 ▲음대에는 진학하지 않은 채 독학으로만 작곡법을 배웠다 ▲17세 때 원인불명의 편두통으로 청각장애가 발병, 35세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등이다.
그러나 <여성세븐>이 취재한 결과, 위 내용들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한 동창생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폭로했다.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피아노 치는 걸 본 적이 없을뿐더러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다. 게다가 그는 상업계 출신이었다. 학창시절에도 공상허언증 기질이 다분해 여러 명의 친구를 상대로 거짓말을 진실로 우기기도 했다. 그땐 거짓말인 것을 바로 눈치 챌 정도로 서툴렀지만 말이다.”
또 다른 동창생은 “허세를 부리는 타입이랄까. 어쨌든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 했다. 연극부 동아리 부원으로 학교를 졸업하면 배우가 될 거라고 늘 말했었다”면서 “한번은 허풍 때문에 불량배들에게 찍혀 큰 소동이 일었다”고 제보했다.
폭로전에 가담한 사람은 가족도 있었다. 사무라고치의 장모는 “처음 봤을 때부터 수상한 점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사무라고치가 막내의 친구인 척하며, 갑자기 집에 찾아왔다는 것. 뒤늦게 안 사실은 버스정류장에서 본 딸에게 첫눈에 반해 집까지 쫓아온 거였다. 당시 그의 직업은 사극에 출연하는 엑스트라. 여러모로 탐탁지 않았지만 결국 딸은 1988년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사무라고치는 록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딸은 돈을 벌며 그를 뒷바라지하기에 바빴다. 장모는 “16년 전부터 딸, 사위와 연락이 끊어지게 됐다”면서 “사과문을 발표한 후에도 처가에는 전화 한 통이 없다. 속고 있는 딸이 어서 여기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눈물지었다.
또한 과거 사무라고치와 함께 엑스트라로 활동했다고 밝힌 남성은 “사무라고치가 유명 배우의 딸과 동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증언대로라면, 당시 사무라고치는 현재의 아내 A와도 사귀고 있었으니 이른바 ‘양다리’를 걸쳤다는 얘기가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말로 점철된 사무라고치. 그가 작곡가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약 6000만 엔(약 6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2012년에는 요코하마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우리 돈으로 약 2억 원 상당의 집값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알려졌다. 거짓말 덕분에 명예는 물론 부까지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
한편, 이번 소동은 해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은 일제히 ‘가짜 베토벤 소동’이란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사무라고치가 저지른 일련의 기만에 대해 “베토벤의 가면을 빌리기 위한 거짓 연기”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클래식 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일본의 특성이 그를 거짓으로 물들게 했다”고 동기를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사무라고치가 일본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한 건 틀림없다”며 “정식으로 사과 회견을 열어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