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논란도, 100억 러브콜도 싹 다 잊었습니다
# 첫 해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첫 시즌 마이너리그 강등에 대한 거부권이 없는 윤석민은 스프링캠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전망이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여러 팀에서 관심을 나타냈지만, 계약 내용이 좋지 않았다. 어느 팀에선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막판에 볼티모어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마이너리그 강등 조항 때문에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끝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지난 시즌 어깨 부상으로 3승6패의 성적을 올린 부분과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된 데 대해 오리올스에서 물고 늘어졌다고 들었다. 스프링캠프 시작일은 다가오고, 협상에 진전은 없고…, 그래서 내가 한 발 양보했다. 첫 해는 스프링캠프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메이저리그 입성을 급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천천히 몸을 만들어가면서 적응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윤석민은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벅 쇼월터 감독으로부터 몇 차례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2011년 17승을 거둔 선수가 2013년 3승밖에 올리지 못한 데 대한 미스터리를 벅 쇼월터 감독이 직접 풀고 싶어 한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 국내 여러 팀에 러브콜 받아
지난 10월 14일 미국으로 출국했던 윤석민은 비자 만료와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12월 말, 일시 귀국했다. 윤석민의 귀국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윤석민에게 관심을 보였던 팀들이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윤석민과 줄을 대려 바삐 움직였다고 한다. 윤석민은 기자에게 “100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제시한 팀도 있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여러 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강민호의 FA 몸값과 비교도 안 되는 거액을 제시하며 계약하기를 희망했다. 나중에는 부모님이 흔들리셨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좋은 계약을 이끌어 내리란 보장이 없는 상태다 보니 부모님께서 한국에 잔류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게 되면 내 야구 인생에서 메이저리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돈보다 내 꿈을 이루는 게 더 중요했다. 한국에서 야구하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순간을 상상하며 참고 인내할 수 있었는데, 지금 도전을 멈춘다면 난 은퇴할 때까지 야구가 재미없다는 생각으로 끝낼 것 같았다. 야구를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야구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나한테는 돈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제안들을 다 뿌리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볼티모어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윤석민은 야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신의 오랜 꿈을 지키려 노력했다. 단 한 번뿐인 선택의 기로에서 돈을 좇기보단 명예를 앞세웠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 선수들에 먼저 다가가 ‘하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 생활을 하는 동안 윤석민의 이미지는 ‘조용함’ ‘차분함’으로 대변됐다. 윤석민이 미국 진출을 희망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야구전문가들은 윤석민의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이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현진이 첫해 LA다저스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배짱과 뛰어난 친화력이 있었다는 얘기도 뒤따랐다. 그렇다면 볼티모어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은 후 윤석민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처음부터 선수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여기선 루키 신분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런 나를 모두 따뜻하게 받아줬다. 이곳에 처음 메디컬테스트를 받으러 왔을 때 버드 노리스란 선수가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친절히 가이드하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가 오리올스 5선발 자리를 놓고 나와 경쟁하는 친구라고 하더라. 여기선 내가 ‘용병’ 신분 아닌가.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 며칠 지내면서 언어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 중이다.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다면 거리감을 좁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둥지를 튼 윤석민이 2월 18일(현지시간) 구단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악명 높은 오리올스 메디컬테스트
오리올스는 메이저리그 30개 팀들 중 메디컬테스트가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팀이다. 거액의 계약을 체결한 이후 메디컬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해 계약이 무산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롯데 정대현이 오리올스와 계약까지 갔다가 메디컬테스트에서 떨어져 입단이 불발된 사례도 있었다.
“나도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메디컬테스트를 받기 전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메디컬테스트에 임해 보니까 왜 통과하기가 힘든지 실감되더라. 한국에선 메디컬테스트의 의미가 아픈 부위만 체크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머리카락부터 발가락, 발톱까지 샅샅이 훑어 내린다. 심지어 중요 부위까지 검사를 해 깜짝 놀랐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데 그 부위의 건강함(?)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테스트를 받고선 쓰러질 정도였다. 재미있는 건, 이 테스트가 하루 동안에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음날 눈, 코, 치아 검사까지 다시 시행됐다. 그 다음엔 계속되는 피 뽑기가 있었다. 메디컬테스트 받고 병원에 입원한 선수가 나오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 정밀 검사를 거쳤지만 윤석민의 몸에선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해서 1000만 원이 넘는 심전도 검사를 받은 것 외엔 모든 부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입단식이 열렸고, 지난 2월 19일(한국시간) 윤석민의 야구인생에 한 점을 찍는 메이저리그 입성의 순간이 펼쳐진 것이다.
윤석민은 기자에게 “가끔은 내가 17승을 거뒀던 2011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 절차를 통해 이곳에 왔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 오고갔을 것이다”면서 “그렇다고 미련은 갖지 않는다. 어차피 이 또한 내 몫이고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오리올스의 스프링캠프지인 사라소타에는 한식당이 딱 한 곳밖에 없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그로선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며 김치찌개와 갈비를 즐겨 먹었다. ‘삼오정’이란 한식당은 이전 김병현이 보스턴 레드삭스에 있을 당시 단골로 찾았던 가게이다. 그 김병현은 한국에, 윤석민은 캠프 동안 사라소타에서 생활한다. 참으로 돌고 도는 인생이다.
플로리다 사라소타=이영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