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사이 갈팡질팡 나, 총리 맞어?
아베 총리의 부인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의 아키에와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깐깐한 시어머니 요코는 오래전부터 물과 기름 관계였다.
아울러 “농업이 공산품과 똑같이 다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해 아베 정권의 자유무역협정 정책에도 부정적인 입장임을 밝혔다. 거침없는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아키에 여사는 페이스북에 한일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주간겐다이> 보도에 따르면, 이런 아키에 여사를 누구보다도 서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고 한다. 바로 아베 총리의 어머니 아베 요코(85)다. 평생 정치가의 아내로서 ‘언제나 세 발짝 물러서서 남편의 그림자를 밟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으로 살아온 아베 요코 여사. 그녀의 가치관에서 볼 때, ‘아들의 의견에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며느리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고부간은 오래전부터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일본 최대 제과회사 모리나가 사장의 장녀인 아키에가 아베 집안에 시집온 것은 1987년. 당시 아베 총리는 순수하고 자유분방한 그녀의 성격에 홀딱 반했지만, 시어머니 요코는 결혼 초부터 “치마가 너무 짧다” “염주를 쥐는 방식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등 매사 자유로운 재벌가 출신 며느리를 영 성에 차지 않아 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2년 가을, 아베 총리가 재취임하기 직전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아키에 여사가 도쿄에 선술집 ‘우주(UZU)’를 오픈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시어머니 요코는 “남편이 총리를 목표로 하는 중요한 순간에 아내가 술집을 내겠다니 말도 안된다”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가 뜻을 굽히지 않고, 개업하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가장 최근인 1월 4일, 한 호텔에서 열린 신년 모임에서는 “아키에 여사가 아예 시어머니는 물론 아베 총리와도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는 말도 들린다. 제보자는 “마치 아키에 여사가 시어머니를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베 총리의 집안은 친가, 외가 모두 일본의 유력 정치가문이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1987년 사망), 아버지는 아베 신타로 전 외상(1991년 사망), 그리고 기시의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1975년 사망) 역시 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흔히 일본의 정치 명문가로 불리는 기시, 아베, 사토 가문은 오랜 세월 서로 양자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정략결혼으로 세습정치를 유지해왔다. 그래서일까. 기시 노부스케의 장녀로 태어난 요코 여사는 가문의 혈통 유지를 매우 중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그녀는 자신의 셋째 아들인 노부오를 친정 기시 가문에 양자로 들여보내기까지 했다. 따라서 기시 노부오 현 일본 외무성 부대신(54)은 아베 총리의 친동생이지만, 두 형제는 성이 다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일각에서는 “요코와 아키에 간의 고부갈등은 아베 총리 부부에게 후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전후 무려 3명의 총리를 배출한 정치가문의 3번째 총리가 된 아베 신조는 자식을 두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은 요코 여사에게 통한의 일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며느리 아키에는 2006년 자신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로 86세가 되는 요코 여사는 기시 노부스케의 딸임을 인생 최대 자랑으로 여겨왔다. 기시 노부스케가 누구인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로 전쟁 및 전후 권세를 떨친 ‘쇼와의 요괴’라 불리는 인물이다. 아베 총리도 늘 “외조부를 가장 존경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는 아베 총리의 어린 시절이 연관 있다고 추정된다.
한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베 총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 요코는 남편의 정치적 지원을 위해 뛰어다니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어린 아베 신조는 어머니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것과 마찬가지로, 유난히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했다고. 지인은 “당시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 기시를 자랑스러워하면 엄마가 기뻐해준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자주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주간겐다이>는 “아베 총리가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를 존경하게 된 배경과 총리로서 외조부가 유일하게 이루지 못했던 헌법 개정을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현 정권의 목표로 삼은 것은 어쩌면 어머니 요코를 향한 마음일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가 완전히 어머니 편에 서지 못한 채, 아내에게도 쩔쩔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잡지는 아베 신조의 1차 내각 시절의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06년 9월, 만 52세 나이로 전후 최연소 총리에 올랐으나 정확히 1년 만에 건강악화로 사임했다. 사임 이유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당시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엄청난 복통에 시달리고 변기가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다량의 하혈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외유 중에는 기저귀를 찼다. 잡지는 “아키에 여사가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시중을 들었다”고 전하면서 “힘든 시절 재벌가의 따님이 지극정성으로 돌봐줬기 때문에 총리는 아내에게 강하게 나올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2012년 9월 아베 총리가 2번째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 했을 때 아키에 여사는 극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다시 출마 이야기를 꺼내자 “대신 앞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어머니에게는 후사를 잇지 못한 미안함에, 아내에게는 간병에 대한 고마움에 고부간의 사이가 틀어져도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는 남편. 두 여자에게 둘러싸인 가정 내에서 아베 총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