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후회없는 도전’ 사랑의 힘 컸다
구윤성 기자
대한민국은 분명 빙상 강국이다. 쇼트트랙 열풍을 시작으로 이제는 ‘피겨여왕’ 김연아와 ‘빙속여제’ 이상화를 보유하고 있다. 쇼트트랙은 물론이고 스피드 스케이팅에 피겨스케이팅까지, 대한민국은 빙상 강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아쉽게도 빙상 강국은 선수들의 열정만으로 완성됐다. 제대로 된 인프라는 고사하고 빙상장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선수들은 열정 하나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다. 심지어 빙상 국가대표들이 모여서 훈련하는 태릉선수촌에도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가 없어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등 다른 빙상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과 링크를 시간 별로 나눠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빙상장을 나눠 쓰는 김연아와 김원중에겐 사랑의 씨앗이 됐다.
김연아는 물론 전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피겨 여왕이고 김원중 역시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팀의 에이스다.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김원중은 아이스하키 팬들 사이에선 가장 인기가 많은 스타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이런 대스타들이 태릉선수촌 아이스링크를 나눠서 사용하는 열악함 속에서 사랑을 꽃피웠다.
김연아와 김원중이 만난 것은 2012년 11월이었다. 그해 7월 김연아는 선수 복귀를 선언하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 것. 그리고 그해 11월 김원중도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팀에서 선수 생활을 해온 김원중은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이 창단되면서 상무 소속이 됐다.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이 아이스하키의 평창 동계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창단된 만큼 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 김원중의 입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태릉선수촌에서 조우한 김연아와 김원중은 아이스링크에서 함께 훈련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디스패치>가 취재에 돌입한 2013년 여름엔 이미 두 사람은 연인이 돼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는 두 사람 생일, 크리스마스 이브 등 틈틈이 김원중과 데이트를 즐겼다. 사진은 두 사람의 데이트 모습으로 [디스패치] 홈페이지 캡처.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의 열애가 혹시 경기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을까. 고난도의 점프와 섬세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에게 사랑이 혹시 집중력 저하로 연결되진 않았을까.
그렇지만 <디스패치>의 밀착 취재 결과 김연아와 김원중은 데이트 역시 훈련의 연장이었다. 이들의 데이트는 대부분 김원중의 스케줄에 맞춰 진행됐다. 상무 소속으로 군인 신분인 김원중은 내무반 생활을 하고 있어 외출 및 외박이 제한돼 있다. 따라서 김원중이 외출이나 외박을 받아야 겨우 데이트가 가능했던 것. <디스패치>는 두 사람의 생일인 9월 5일과 12월 19일,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등에 이뤄진 데이트를 포착했다. 데이트 장소는 늘 태릉선수촌 인근 고깃집,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데이트 시간도 매번 두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빨리 근육을 만들어야 해 의식적으로 고기를 먹었다”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이 발언이 자신의 데이트를 살짝 고백한 것이었다.
스포츠 선수들이 가장 힘겨운 부분은 아무래도 부상이다. 김연아 역시 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훈련 강도를 높이던 지난해 9월 중족골 미세손상이라는 부상을 당했다.
부상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김원중이 큰 힘이 됐다. 아이스하키는 빙상 종목 가운데에서 가장 부상이 잦다. 다른 빙상 종목과 달리 선수들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경기를 치르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상을 극복하는 방법, 이로 인한 심리적인 부분을 치유하는 부분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디스패치>는 김원중 지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원중이 부상 당시 김연아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그를 다시 웃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김연아와 김원중은 데이트를 하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철저히 노력했다. ‘피겨 여왕’은 데이트도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전투적으로 해온 셈이다.
#김연아, 평창에서 아이스하키 응원할까?
김원중은 평창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창단된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의 부동의 에이스다. 연합뉴스
소치 동계올림픽 15개 정식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대한민국이 선수를 파견하지 못한 종목이 바로 아이스하키다. 아이스하키는 올림픽 개최국에 본선 자동출전권을 부여하지 않아 본선 진출국이 가려지는 2016년까지 세계 랭킹을 끌어 올려야 한다. 현재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세계 랭킹은 23위로 올림픽 본선에 12팀만 진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 길이 얼다.
다시 말해 김연아의 동계올림픽은 이제 끝났지만 김원중의 동계올림픽은 이제 시작이다. 결국 두 사람의 데이트는 앞으로도 경기력 향상이라는 큰 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고, 지금까진 김원중이 김연아의 경기력 향상을 더 도왔다면 앞으로는 그 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4년 뒤 평창의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김연아가 김원중을 응원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먼저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남자팀이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4년 뒤에도 두 사람이 열애 중이어야 한다. 아직은 두 사람의 결혼까지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4년 뒤 평창에서도 계속된다면 그땐 자연스럽게 결혼설이 언급되지 않을까.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