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회장 임명권자인 농림부 허상만 장관이 신임 마사회장에 박창정 부회장(58)을 승진 임명하자, 마사회 직원들은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기 마사회 회장으로 시민운동가 출신인 정성헌씨(57)가 임명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마사회장 임명 과정을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 박창정 신임 마사회장이 지난 13일 취임식에서 향후 마사 회 운영 구상 등을 밝히고 있다. | ||
농림부는 지난 11일 마사회 회장으로 박창정 부회장을 임명했고, 13일 박 회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윤영호 마사회 회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6월11일 자진 사퇴한 지 두 달 만에 공석이 메워진 것이다. 그런데 신임 마사회장의 임명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당초 마사회장으로 내정됐던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7월21일 몇몇 일간지에 ‘차기 마사회장으로 시민운동단체 출신인 농사꾼 정성헌씨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가면서부터였다. 당시 청와대는 “마사회 조직을 혁신하는 개혁적인 인물이 적합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사정권 시절 재야활동을 했던 정씨가 차기 마사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마사회장에 친 여권 성향의 정치인이나 군인 출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임명됨으로써 갖가지 의혹에 시달렸던 과거와는 다른 인사 정책을 펼쳐 보이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로 해석됐다.
그런데 정씨가 내정된 시기에는 마사회 회장을 임명해야 할 농림부 장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당시는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새만금 간척사업’과 관련해 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차기 마사회장은 신임 농림부장관이 임명된 이후에나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월25일 순천대 총장 출신인 허상만씨가 신임 농림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다시 마사회장에 누가 임명될 지 관심이 쏠렸다. 허 장관이 취임하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은 “마사회 인사는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허 장관은 “이미 내정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정씨가 차기 마사회장에 임명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지난 11일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신임 마사회장은 마사회 부회장이었던 박창정씨였다. 그러면서 마사회장 내정자가 중간에 바뀐 까닭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신임 회장으로 가장 유력했던 정성헌씨가 막판에 ‘물을 먹은’ 까닭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화살을 돌렸다.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은 전화통화를 통해 “청와대에서는 차기 마사회장을 내정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씨를 마사회장 내정자로 결정한 적도 없는데, 일부 언론에서 앞서 보도했다는 얘기다.
정 보좌관은 “이번에 회장으로 임명된 박창정씨와 정성헌씨 등 3명의 인사가 마사회장 후보로 오르긴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차기 마사회장으로 3명이 물망에 올랐고, 막판에 박씨가 최종 낙점됐다는 게 정 보좌관의 설명이다.
그런데 정씨가 막판에 밀린 이유에 대해선 “굳이 지나간 일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면서 언급을 피했다. 당초 노무현 대통령은 정성헌씨를 직접 거명하면서 “개혁적인 인사를 발탁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농림부측에서 박창정 부회장을 적극 천거, 승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와 농림부 사이의 갈등설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 보좌관은 “(청와대와 농림부가) 좋고 안 좋고 할 일이 없다”면서 “허 장관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항간의 갈등설을 일축했다.
허상만 장관 비서실 관계자는 “장관님께서는 ‘박창정씨가 마사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임명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마사회장 인선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마사회쪽에서 당시 박창정 부회장을 회장으로 적극 추천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이에 대해 마사회 관계자는 “농림부 장관이 마사회 회장 임명권자이기 때문에 마사회 임원이 장관에게 건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사회) 노조쪽에서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적은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마사회 노조의 한 간부는 “정성헌씨 등 특정 개인을 지목해서 회장 부임을 반대한 적은 없다”면서 “다만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번 회장 인사문제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지난 13일 발행된 ‘노보’에 따르면, ‘경마에 관한 경험이 있는 내부 인사 중에서 회장이 임명됐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신임 회장 역시 관료출신이지만 과거의 경험도 없는 정치권이나 군 출신 인사들이 마사회에서 저지른 작태들을 돌이켜본다면 내부에서 경험을 쌓은 (박창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임명됨으로써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한 “당초 농림부에서 밝힌 공개모집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며 “참여정부의 이번 마사회장 인사는 내부 인사 발탁 외에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찌 됐든 이번 마사회장 인선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처음부터 청와대측이 마사회장 내정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가 내부 ‘입 단속’을 제대로 못한 결과, 새로 임명된 마사회장이나, 하마평에 올랐던 인사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기 때문이다.
[박창정 신임 마사회장]
‘경마장 주인’이 된 신임 한국마사회 박창정 회장(58)은 전북 무주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는 경북 김천고를 졸업했다. 1973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그 해 10월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전문 농정관료’로 통한다. 그의 공직 이력만 보더라도, 지난 1974년 농림수산부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해 YS시절엔 대통령비서실 농림비서관으로도 재직했다. 이후 산림청 차장과 농림부 차관보, 농촌진흥청 차장을 거쳐 지난 2001년 5월부터 마사회 부회장을 맡아오다 이번에 회장으로 임명된 인물.
박 회장은 지난 13일 취임사에서 “부산·경남 경마장 개장과 한국 경마의 세계화를 앞당길 제30회 아시아경마연맹(ARF) 총회 개최 등 당면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지속적인 경영 혁신과 경마팬 제일주의를 실현, 경마산업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