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장악 ‘GT계’ 전략 미스
박원순 시장의 재선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야권 창당 이슈와 여권 경선전 등 여의도발 소식에 박 시장이 묻힌 분위기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여권은 빠르게 접점을 좁히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황식 전 총리가 경선에 뛰어든 이후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김 전 총리가 출마 직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여러 문제를 상의했다며 은연중 친분을 내세우자 정몽준 의원 측이 ‘청와대 개입설’을 주장하는 등 연일 이슈를 만들어 낸다. 경선에 과부하가 걸릴 조짐이 보이자마자 당내 초·재선 의원들이 엄정 중립을 요구하면서 장내를 정리하는 수순으로 여론 대응도 신속하다.
실제 결과도 나쁘지 않다. 지난 15일 <중앙일보>와 한국갤럽이 서울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 응답률 30.5%)에서 박원순 시장은 42.5%를 기록하며 정몽준 의원(42.1%)에 불과 0.4%포인트(p) 앞섰다.
전계완 매일P&I 대표는 “박 시장이 대세론에 안주한 것이 현재 흥행 실패의 원인이다. 야권이 방심하는 사이 새누리당이 박원순 대세론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형국”이라며 “지금 여권은 이번 지방선거를 박근혜의 선거에서 정몽준·남경필·원희룡의 선거로 바꿔 나가고 있는데 야권은 거꾸로 김한길-안철수 선거로 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자당 후보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여론조사에서 우위임에도 박 시장 측이 “선거를 떠나 서울시정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에서 여권에 정치적으로 맞대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여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점쳐진다. 지난 20일 서울시가 ‘2018년까지 임대주택 8만 호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브리핑을 내놓자 정몽준 의원 측은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에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발끈했다. 그러자 박 시장 측은 “정몽준 의원께서는 선거법 숙지부터 하셔야겠다”며 지난 18대 총선 당시 정 의원이 뉴타운 관련 허위사실 공표로 불구속 기소당한 전력을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박원순 시장(왼쪽)과 정몽준 의원이 2월 16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
“지난 18대 총선 당시 수도권 선거를 떠올려 보라. 가장 충격적인 곳은 김근태 고문이 정치 신인인 신지호 전 의원에게 졌던 도봉구였다. 서울에 뉴타운 바람이 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도봉구에서 김근태가 진다는 것은 야권지지자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2007년 대선 때도 GT계는 DY(정동영)계에 힘 한번 못 쓰고 주저앉았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사실상 친노가 시민사회와 연합해 주도한 것이지 GT계가 전면에서 활약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지적에 공희준 정치평론가는 “박원순 시장 보좌 그룹은 서울시청 공무원 신분이다. 여의도 정치인 전략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박 시장 측이 ‘성과가 없다’는 여권 주자들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박 시장은 성과를 알리기보다 오히려 서울시를 2년여밖에 맡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편이 낫다.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인정에 약하다”라고 전했다.
현재 야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작업이 끝나는 대로 경선 체제에 돌입할 예정이지만 서울은 시기적으로 늦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천은 문병호 의원이, 경기도는 김상곤 전 교육감이 경선에 뛰어든 것에 비하면 서울시는 누가 나와도 ‘비호감’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는 추미애 의원이, 새정치연합에서는 이계안 공동위원장이 야권 경선주자로 거론됐지만 추 의원은 차기 당권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새정치연합 쪽은 박 시장 들러리에 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의 야권 전략통은 “단독 추대보다는 경선을 통해 힘을 몰아주는 것이 나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지금 문제는 친노계나 비노계 두 진영 모두 지방선거에서 이길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친노계나 비노계나 당 주도권 싸움에 열을 올리다 뒤늦게 뛰어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