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바뀌자마자 국감 ‘시험대’로…
5월 상임위 배치 직후 국정감사가 열린다. 여야 의원들은 인기 상임위를 배치받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는 한편, 희망 상임위 현안들을 두고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3월 14일, 국회에서 만난 새누리당 소속의 한 초선의원. 그는 보좌진이 준비한 국정자료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열공’ 중이었다. 기자가 의원실에 찾아온 줄도 모를 정도였다. 이게 다 5월 여야 원내대표 선거와 함께 있을 상임위 배치 때문이다.
기획재정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 의원은 “나도 학창시절 공부깨나 했다고 자부했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은 없었다”며 “6월엔 지방선거도 있지만, 상임위 배치 직후 국정감사도 있다. 초선인 나로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소속 의원 보좌관은 “상임위 이동을 앞둔 의원실은 그야말로 열공 모드”라며 “염두에 둔 상임위 소관 기관 소속 연구원이나 전·현직 기관장, 관련분야 대학교수 등을 초빙해 의원실 전체가 과외를 받는가 하면 최근 3년간 국정자료를 밤새가며 정독하기도 한다. 올해 경우는 상임위 배치 직후 국감이 예정됐기 때문에 의원들로서는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감은 예년과 다르게 6월과 9월, 각각 10일씩 치러진다. 매번 반복되는 수박 겉핥기식 국감에서 벗어나 올해만큼은 효율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2분기로 분산한다는 방침이다. 현직 의원들 입장에선 6·4 지방선거와 함께 선거 직후 치러질 1차 국감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자신이 선호하는 상임위 배치를 꾀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전개해야 한다. 또 각기 염두에 둔 상임위 현안들을 미리미리 공부해 두고, 선거 직후 치러질 국감에 대비해야 한다.
상임위 배치는 5월에 새롭게 선출될 여야 원내대표의 권한이다. 제1 원칙은 각 의원들의 전문성을 고려한다는 것. 이 때문에 소위 말하는 율사(판·검사,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선행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 배치되는 것이 관례다. 이밖에 각 의원들로부터 희망 상임위 신청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선수와 지역 안배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조경태 민주당 의원의 경우 3선이라는 높은 선수와 야권 내 희소한 지역구(부산 사하을) 특성상 상임위 선택권의 폭이 넓은 셈이다.
무엇보다 인기 상임위 ‘빅3’로 꼽히는 건설교통위, 산업통상자원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를 가기 위한 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빅3 상임위 모두, 대형 공기업 및 공공기관이 다수 몰려있고, 건교위의 경우 의원들의 각 지역구 대형 토목사업 유치 등과 직결된다. 반면 소관기관의 규모가 작고 의원들의 지역구 현안과는 별로 무관한 환경노동위원회나 법사위의 경우 의원들이 꺼리는 상임위로 꼽힌다.
상임위 배정에 앞서 각 의원실 보좌진들의 연쇄이동도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올해는 6·4 지방선거와 원내대표 선출에서 비롯된 상임위 이동이라는 두 가지 현안이 겹쳤기 때문에 보좌진 이동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상임위 배정에 앞서 오랜 기간 해당 상임위의 정책을 전문적으로 다뤄본 전문 보좌 인력을 섭외하는 것이 요즘 들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한 전직 보좌관은 “예전엔 정무 보좌관이 중요했지만, 요즘은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정책 보좌관이 더 중요해졌다”라며 “해당 분야를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다뤄본 보좌관들은 자신만의 전문성은 물론 상임위 서기관을 비롯한 국회 상근 인력들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일 자체도 훨씬 수월하다. 상임위 이동을 염두에 둔 의원실의 경우 이러한 정책 보좌관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보좌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한 예로 오랜 기간 외통위에서 별 다른 성과도 눈길도 끌지 못했던 야권의 중진의원이 지난해 산자위로 상임위를 이동한 후 국회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당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에너지 공기업 예산누수를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정확히 지적하며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는 산자위 배정을 앞두고 정부회계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외부 전문가를 보좌관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법사위 소속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위 배정을 염두에 두고 이와 관련한 전문 보좌진을 특보로 영입했다고 한다.
앞서의 전직 보좌관은 “상임위 이동을 앞둔 의원들은 저마다 첫선을 보이는 자리를 앞두고 돋보일 만한 건수가 필요하다”라며 “건수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소관기관 내부의 문제들을 들춰내는 것이고, 하나는 상임위와 연결해 자신의 지역구에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아이템을 준비하는 것이다. 올해는 지방선거를 전후해 상임위 이동과 연이어 국감이 치러진다. 의원들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