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환부도 도려낼 수 있을까
지난 12일 유우성 씨가 간첩 증거 조작 사건 관련해 서울고검 조사팀에 출두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고 나오는 모습. 사진은 이미지 합성. 구윤성 기자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 3인방 중 협력자 김 씨와 국정원 ‘블랙요원’ 김 아무개 조정관(일명 ‘김사장’)을 모해증거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김 씨는 검찰조사에서 “국정원 김 조정관의 요구로 가짜 문서를 제작했고 해당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국정원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김 조정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김 조정관과 국정원이 문서를 위조한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김 조정관뿐 아니라 주선양총영사관 부총영사로 근무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소속 권 아무개 과장 등 국정원 직원들을 잇달아 소환 조사하면서 국정원을 압박하고 있다.
검찰은 문서 위조가 드러난 만큼 국정원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문서 위조에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연일 야당 등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검찰도 자칫하면 국정원과 함께 이번 증거조작 사건의 책임을 함께 져야하는 상황이어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 이에 김진태 검찰총장도 이번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수사팀 팀장인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으며 사건을 지휘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국정원이 그동안 암암리에 활동하면서 국가안보라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왔고 이를 견제할 만한 세력도 없어 간첩 증거 조작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대공수사팀 요원들이 개입한 것으로 추측되는 정황들이 속속 들어나고는 있지만 김 조정관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데다가 결정적인 증거도 찾지 못한 상황이라 윗선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김 조정관이 구속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에 기존의 진술을 뒤집고 윗선 지시·보고 등에 대해 입을 열지 여부가 관심이다. 하지만 김 조정관은 지난 19일 구속된 뒤에도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고 있던 김 씨가 ‘현지인 두 사람을 세워 신고하면 싼허 변방검사참으로부터 공식 답변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믿었다”면서 “답변서 위조를 지시하거나 공모하지 않았고 위조 방법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63)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내분과 외압으로 조직이 흔들렸었다. 당시 수사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채동욱 검찰총장도 저의가 다분히 의심되는 ‘혼외자 논란’으로 옷을 벗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을 잘못 건드리면 언젠가는 보복 당할 수 있다는 ‘국정원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다.
검찰은 또 윗선 수사와 함께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유우성 씨의 출입경기록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국정원이 유 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유 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변호인측이 제출한 유 씨의 출입경기록과는 다른 출입경기록을 제출했다.
국정원은 변호인측인 제출한 ‘출-입-입-입’으로 표기된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반박하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협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유 씨가 2006년 5~6월 두 차례 북한을 들어갔음을 입증하는 ‘출-입-출-입’이라고 표기된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입수했다.
검찰은 유 씨의 진짜 출입경기록을 입수하고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위조라고 회신한 문건들의 관인 등을 확보하기 위해 18~20일까지 중국에 조사팀을 보냈다. 중국에서 확보한 자료와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싼허 변방검사참 문건외 유 씨의 출입경기록과 출입경기록에 대한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조회서의 입수과정과 위조 여부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뿐 아니라 수사·공판검사에 대한 수사도 남아있다.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돼 감에 따라 해당 검사들에 대한 수사와 감찰도 계획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 수사에서 배제된 공안부 검사들의 소외감과 불만스러운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공안부 검사들은 유 씨가 간첩이라는 정황이 곳곳에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대공수사에서 협조해온 파트너인 국정원이 가져다 준 증거를 믿지 않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유 씨의 간첩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국정원은 명예회복을 위해 유 씨의 간첩 혐의 입증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 검찰 수뇌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의 검사장급 한 검사는 “해당 검사들이 위조된 증거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몰랐다는 것도 검찰의 무능을 드러낸 일이어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