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박진 대변인(오른쪽)이 한나라당사를 방문한 우리당 정동영 당의장(왼쪽), 신기남 상임중앙위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들이 모두 열린우리당이나 여권 인사라는 점에서 박 대변인의 ‘코드’가 여당 쪽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오갔다. 박 대변인의 ‘여권 인맥’을 잠시 소개해본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는 영국 유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이라고 한다. 정 의장이 지난 1986년 영국 웨일즈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을 때 박 대변인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족들과 함께 가끔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고기도 구워먹는 등 친분을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17대 총선에서는 두 사람이 종로 지역구를 걸고 한판 승부를 펼쳐야할지도 모를 운명에 처해 있다. 정 의장이 당의 사령탑에 오르면서 박 대변인이 버티고 있는 종로에 출마할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대변인은 “깨끗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정 의장에 대해서도 “지금도 본회의장에서 만나면 친근하게 인사한다. 그리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신기남 의원과는 해군에 입대했을 때 교수와 사관후보생으로 만난 사이다. 박 대변인은 지난 80년 3월에 진해 해군대학에서 약 3개월 동안 간부후보생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신 의원이 그곳 교수로 있었다고 한다.
박 대변인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해군대학에서 장교 훈련을 받는데 신기남 선배가 어찌나 굴리던지 원망도 많이 했다. 밥도 안 주고 때리고 해서 3개월 동안 거의 ‘바퀴벌레 생활’을 했다”며 잠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박 대변인이 전하는 신기남 의원과의 또 다른 기억은 5·18이었다. 당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해군대학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박 대변인은 아직 임관도 하지 않은 사관후보생 신분이라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어떤 교관이 신문을 가지고 자신들의 숙소로 들어오더니 “여러분들 지금 의문도 많고 혼란스럽고 할 텐데 내가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겠다”며 후보생들을 다독거리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 뒤 신 교수가 갑자기 “박진 사관후보생 있습니까” 하면서 자신을 찾더란다. 알고 보니 예전에 이곳에 있던 동기가 제대하면서 박 대변인을 잘 좀 봐 주라고 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박 대변인은 “그땐 신기남 선배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사람은 어려울 때 챙겨주는 게 뇌리 속에 오래 남아 있게 마련”이라면서 신 의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후 박 대변인은 중위로 임관한 뒤 날마다 신기남 선배의 하숙집에 찾아가 술잔을 기울이며 두터운 정을 쌓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때 신 선배가 지금의 탈레반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천정배 의원과는 김&장 법률사무소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며칠 전 천 의원이 박 대변인을 보더니 “어이, 박 의원, 내가 자네 선배야”라면서 반겼다고. 그래서 그냥 대학(서울대 법대) 선배라는 말이겠지 싶었는데 천 의원이 “김&장 사무실 선배”라며 반가움을 표시하더라고. 박 대변인은 여당의 핵심 인사들과의 인연을 밝히는 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며 야당 ‘최전방 공격수’의 자세를 늦추지 않았다.
박 대변인은 이밖에도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그는 중위로 임관된 뒤 해군사관학교의 국제법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전임자가 바로 윤영관 대위였다고.
당시 박 대변인은 전임자와의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신고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군기는 빠져(?) 있고 쭈글쭈글한 모자를 쓴 사람’이 털레털레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박진 중위, 이것 강의안입니다”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한다. 박 대변인은 “이때의 인연으로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을 할 때 윤 장관에게는 그리 모질게 하지 못했다”며 털털 웃었다.
박 대변인은 자신의 ‘여 편향적 인맥’에 대해 “혹시 여당에서 탈당하라고 할까봐 겁난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