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특검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춘추관에서 대선자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노 대통령은 지난 16일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자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여론도 특검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뚜렷이 반분된 채 현재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요신문>은 역대 특검팀에서 수사를 지휘했던 전 특검과 특검보 1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이들에게 현재의 특검 논란 시비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공방 등 네 가지 쟁점 사항에 대해 질문했다.
역대 특검 출신들은 대부분 “검찰이 현재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서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번 인터뷰 대상은 지난 99년 국내 헌정 사상 최초로 도입된 ‘옷로비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특검과 특검보를 각각 맡았던 최병모 강원일 김형태 변호사와 양인석 청와대 비서관, 2001년 말 출범한 ‘이용호 게이트’의 차정일 전 특검과 이상수, 김원중 전 특검보, 그리고 올해 실시된 ‘대북송금 사건’의 송두환 특검과 박광빈 김종훈 특검보 등 모두 10명의 특검 출신 인사들이었다.
이중 인터뷰에 응한 8명의 특검 출신 인사 가운데 7명은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서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특검을 도입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질문에 대해서도 3명이 “특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3명이 “일단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결정해야 한다”라고 답하는 등 ‘조건부 거부’를 포함한 거부권 행사에 모두 6명이 찬성했다. 또한 정치권에 의해 특검이 너무 남용되는 것에 대해 모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차정일 전 특검만 “고도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특검 수사가 바람직한 면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번 인터뷰에는 6명의 특검 출신들이 실명으로 인터뷰에 응했으며 한 명은 익명으로, 또 다른 한 명은 일부 질문에 대해서만 익명을 전제로 답변했다. 송두환 특검은 대북송금 특검이 아직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양인석 청와대 비서관은 재직중인 상황에서 입장 표명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했다.
[특검 도입 바람직 한가]
<일요신문>은 각 특검 출신 인사들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현재 국회에서 통과된 특검법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답변에 응한 8명 가운데 7명은 한결같이 “이번 특검 도입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특검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대답은 단 한 명이었다.
최병모 전 특검은 “특별검사란 말 그대로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마지막 보루로 사용해야 하는 특단의 조치이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 지지 속에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데 정치권에서 불공정수사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김형태 전 특검보는 “검찰을 1백%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현재 송두율 교수 건으로 검찰과 싸우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런 식으로 툭하면 특검을 내세운다면 검찰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형국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원중 전 특검보는 “특검이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계속 의혹이 불거지거나, 혹은 대북송금 사건처럼 검찰 스스로 수사를 포기하는 사안에 대해서 아주 예외적으로 도입되는 것인데, 이번 건은 예전과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고 밝혔다. 이상수 전 특검보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특검제도가 각 정파의 당리당략에 따라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느낌이어서 한심하기까지 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강원일 전 특검은 “현재 검찰은 능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검찰 수사의 계속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익명을 전제로 한 한 특검 출신 인사는 “이런 식의 특검은 절대 해선 안된다”면서 “한정된 기한에 한정된 인원만을 운용할 수 있는 특검의 성격상 이번 특검은 자칫 잘못하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제대로 수사도 못하고 정치권에 면죄부만 안겨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야당에서 특검을 무리하다 싶게 들고 나서는 것도 혹시 이런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이용호 게이트를 파헤치며 가장 성공적인 특검 수사를 이끌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차정일 전 특검은 “현재 검찰의 수사가 예전과는 달리 상당한 중립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 측근 문제 등 고도의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특검으로 수사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 (왼쪽부터) 최병모 전 특검, 차정일 전 특검, 강원일 전 특검 | ||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된 현재 관심은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쏠려 있다. 당초 특검 반대쪽이 다소 우세했던 국민 여론도 현재는 “이왕 국회 통과가 된 시점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이 과반수를 넘어서고 있다.
특검 출신 인사들의 의견은 대체로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해야 한다거나 조건부 거부권 행사를 지지하는 쪽이 우세했다. 8명 가운데 6명이 이런 입장이었고, 2명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거부권을 지지한 6명 가운데 ‘절대 거부’와 ‘조건부 거부’는 각각 3명씩이었다.
최 전 특검은 “특검이 완전히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이 당연히 거부권으로 이런 정쟁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두 명의 특검 출신 인사들도 “특검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지지했다.
김형태 전 특검보는 “우선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에 국민 여론을 고려해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면서 조건부 거부권에 찬성의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정치권에서 자꾸 총선 운운하며 정치적 일정과 연관 짓는 것 자체가 이번 대선 비자금 수사를 정치적 쟁점의 울타리에 넣어두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전 특검보는 “특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지지였다”면서 “일단 검찰의 수사를 지켜본 뒤에 대통령이 국민 여론을 잘 살펴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중 전 특검보는 “이제까지의 각 특검팀들은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출발했음을 비추어 볼 때, 현재의 특검은 과반수 정도의 지지만을 갖고 출범해야 하는 가장 불행한 특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적절치 않다거나 자칫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차 전 특검은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특검 상설화를 공약한 바도 있고 또 어차피 주요 현안이 대통령 측근 문제인 만큼, 국회 통과가 된 지금 시점에서는 특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특검 출신 인사는 “특검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사안을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자칫 국민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이는 새로운 정치 공방으로 쟁점화 될 우려가 있다”며 “그럴 경우 완전히 본말이 호도된 채 정작 국민의 여망인 정치 비자금 척결 문제가 엉뚱한 정치 공방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검법 개정 필요한가]
한때 한나라당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던 특검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에 응답한 특검 출신 인사 모두가 한 목소리로 “현재의 특검법으로도 중립성은 충분히 보장되며, 자칫 한나라당 주장대로 국회의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한다면 이는 삼권분립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최 전 특검은 “국회의장이 변협과 원내교섭단체 대표들과의 협의를 통해 특검후보 2명을 지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회의장이 특검을 직접 뽑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한나라당 법안대로라면 검사와 수사관 숫자만 80명이 넘고, 이에 따른 사무요원 등 총 인원만 1백50∼2백 명에 이를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국회를 장악한 한나라당이 별도의 검찰을 따로 하나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김원중 전 특검보는 “국회의 역할은 법을 통과시키면 되는 것이지, 수사권자까지 직접 임명하겠다는 것은 엄연한 삼권분립의 위배”라고 주장했다. 이 전 특검보 역시 “법은 한번 정했으면 원칙대로 가야지, 그때 그때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서 정치권에서 함부로 바꾸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차 전 특검 역시 “법무부장관이 특별검사를 복수 후보로 추천하면 법원에서 한 명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는 중립성 문제가 충분히 제기될 소지가 있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의 경우 비정부 단체인 변협에서 후보를 추천토록 했고, 또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던 만큼 현 제도를 고수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번 특검팀의 문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특검 출신 변호사들이 ‘국민적 지지의 취약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원중 전 특검보는 “옷로비, 파업유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의 경우는 여야 합의로 특검법이 통과됐고 그 당위성과 함께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있었기에 수사에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북송금 특검의 경우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특검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도 있어서 상당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경우처럼 여야 합의도 이뤄지지 않고 검찰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국민 여론도 완전히 양분된 상황에서는 자칫 특검이 정치권 논리에 휘말려 우왕좌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특검보는 “현재 검찰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범하는 새 특검팀은 검찰 수사팀과 여러모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검은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검찰에서 파견나온 검사와 수사관들이 과연 특검팀 속에서 제대로 융화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한 특검 출신 변호사는 “현재의 법안대로라면 60∼80명에 이르는 검사와 수사관을 다 채우기에도 솔직히 힘들 것”이라며 지나친 조직의 비대화를 지적했다. 김형태 전 특검보는 “대통령 측근 비리만 한정지어 수사한다고 하지만, 어차피 대선 전반의 정치 비자금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보면 검찰 수사와 부딪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한 그 방대한 수사를 한정된 기간 내에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