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노무현’ 용인술은 ‘박근혜’
안철수 대표가 지지율 극복을 위해 전·현직 대통령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종현 기자
지난 2일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집권여당을 공박했다. 연단 아래에서 안철수 대표의 말을 듣고 있던 최경환 원내대표는 얼굴을 붉히며 “너나 잘해”라고 응수했다. 이날 체면을 구긴 쪽은 여당 지도부였고 별로 이슈가 되지 않는 야당 국회연설이 되레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결국 최경환 원내대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지난 4일 공식 사과했다.
요즘 여권 쪽에서 안철수 대표에 관한 시선과 평가는 국회 입성 1년도 되지 않아 당 대표가 된 대권주자보다 어찌할 도리 없는 정치 초년생에 가깝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공천하면 참패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안철수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로서 본인 이미지만 지키고 나머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라며 “안철수에 대한 일반 국민들 생각을 직접 물어보라. 이번 합당이 민주당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새정치를 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지”라고 일갈했다.
실제 새정치연합 창당 발표 이후 안철수 대표 지지율은 계속 하락 추세다. 지난 3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안철수 대표는 14.8%에 그치며 3주 연속 정몽준 의원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안철수 현상’의 근간이 됐던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싫어서”라는 감정도 어느새 누그러들고 그를 지지하던 상당수가 다시 ‘무당파’로 돌아선 것이 지지율에 나타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지지율 극복을 위해 안철수 대표가 택한 길은 전·현직 대통령을 답습하는 것일까.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가 이미지는 노무현을, 용인술은 박근혜를 차용하고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안철수 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이 무슨 세종시 사수쯤 되는지 안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여의도연구원 출신 여권 전략통의 진단은 이렇다.
“기초선거 이슈는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엉킨 정국을 풀기 위해 던진 원 포인트 개헌 같은 이슈다.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일부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다. 그런데 안 대표 쪽에서 이런 사안인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관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구축한 ‘약속의 정치인’ 이미지가 생긴다고 믿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 창당 이후 자의반 타의반 안철수 대표 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주군의 난폭함’이 읽히기도 한다. 앞서의 여권 전략통은 “안 대표 스스로가 ‘팔고초려’ 또는 ‘십고초려’했다는 최장집 교수나 윤여준 전 장관 등이 다 잘려 나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지지하며 호남을 등진 것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2인자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측근들을 매몰차게 용도 폐기하는 모양새가 떠오르지 않나. 세 사람이 명성은 빌리되 어느 선에 이르면 자르고, 남의 튀는 언사는 못 참는 부분이 닮았다”라고 덧붙였다.
위기감은 내부에서도 분출된다. 안철수 싱크탱크인 내일의 한 기획위원은 “지금 새정치연합 합류 여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솔직히 이게 무슨 약속의 정치인가 싶다. 조직팀장이던 강인철 변호사는 소식이 없다”라고 전했다. 현재 내일 측은 남아있는 20여 명의 기획위원과 수백 명의 달하는 전국 각지의 실행위원 거취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인지 안철수 대표의 용인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잖다. ‘박근혜 용인술’ 하면 주로 ‘인의 장막, 2인자 불허, 재사용과 꼬리 자르기’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박 대통령이 꼭 믿을 수 있는 소수만을 측근으로 삼아 그 안에서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친박계 사이에서는 “튀면 죽는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을 정도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가 합당 과정에서 내부가 아닌 외부 인사들과 많이 상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서초동팀이라는 게 벌써 박 대통령 논현동팀을 떠오르게 하지 않나.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박경철 원장이 정윤회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왼쪽부터 박경철 원장, 금태섭 대변인.
박 원장과 함께 비선으로 드러난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곽수종 팀장 역시 안철수 대표를 조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경철과 안철수 가운데서 조정자 역할을 했던 그는 지난 3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대회 당일 몽골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오히려 더 수상한 행보라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보위하고 있는 보좌진 3인방(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과 같은 역할은 누가 하고 있을까. 여야 모두 가장 많이 거론하는 인물은 조광희 변호사와 이태규 새정치기획팀장이다. 앞서의 내일 기획위원은 “기획위원 가운데 안 대표에게 다이렉트 콜이 가능했던 사람이 조광희 변호사였고 다른 위원들은 그를 거쳤다. 같은 기획위원이라도 위상이 달랐다”라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관해 안철수 대표 측은 “박경철 원장은 2008년 총선 때 민주당 공천위에 있으면서 야권 정치인과 척을 진 사람이 많다. 그때 박지원 비서실장 공천 안 한 게 박경철 원장이었다. 이태규 실장은 워낙 주변에서 친이계 출신(이명박 정부 연설기록비서관)이라고 난리를 치니 나서지 않을 뿐이지 비선이라고 할 것까지 없다”며 “안 공동대표가 이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는 사이는 맞다. 안 대표가 이들 없이 김한길 공동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출신 정치 고수들을 상대로 버텨낼 재간이 있겠나.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고도 분명 과도한 책임론을 뒤집어 씌워 결국 낙오시키려 할 것이다. 끝까지 곁을 지키며 제동을 거는 측근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안철수 대표가 여전히 민주당 출신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 탈당 이후 유일하게 안 의원 곁으로 간 송호창 의원이나 궂은일을 자처하고 있는 금태섭 대변인이 2선 취급을 받으며 사실상 합당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지 못했다고 알려지면서다. 두 사람은 안철수 대표를 만나기 이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먼저 조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의 여권 전략통은 “금 대변인은 굳이 비교하자면 이정현 홍보수석과 닮았다. 한나라당 때만 해도 이정현 수석을 친박계 핵심으로까지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명실상부 친박계 핵심 아닌가. 금 대변인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송호창 의원은 분명 친박이지만 원박(원조 친박)이나 핵박(핵심 친박)이라고 할 수는 없는 구상찬·권영세 정도”라고 비유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안철수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좇는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라며 “안철수 대표가 지금 재래시장에 나가봐야 박 대통령처럼 좋아하면서 반기는 중장년층이 있겠나. 박 대통령은 호남 유세를 가더라도 뒤에서 욕은 할지언정 일단 손 한번 잡아보자는 게 일반적이다. 떠나가는 젊은 세대의 마음부터 다잡는 게 순서다.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 젊은이들이 이해를 하겠나, 공감을 하겠나. 다른 정치개혁 과제가 많은데 왜 유독 그 부분에 몰두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