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관이 환경부 상대로 ‘갑질’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의 C 씨(4급)는 경제수석실 산하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대기업 간부들과 수시로 어울려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드러난 액수만 230만여 원이다. 그는 특히 평소보다 더 각별한 근무기강이 강조되는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에도 무단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골프를 쳤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소속의 D 씨(4급), 금융위원회 소속의 E 씨(4급), 국세청 소속의 F 씨(5급)도 이들과 비슷한 사례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BH(청와대) 근무 축하선물’ 명목으로 상품권을 받거나 골프 접대 등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G 씨(4급)는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할 때 관련 협회장에 방통위 출신 인사가 선출되도록 하기 위해 방송사업자(SO)들에게 청탁을 한 사실이 적발됐다. G 씨도 이들에게서 수시로 식사 등을 접대를 받았다. 경찰청 소속 H 씨(여·8급)는 비서실장 직속 총무비서관실에서 일할 때 교제 중인 남성으로부터 승용차 등 과도한 선물과 생활비를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금품 수수만이 아니었다.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일했던 I 씨(별정직 3급)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친북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가입 사실이 적발됐다. 국가정보원 소속 J 씨(고위공무원단)는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다가 과거 국정원에서 정치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적발된 비위 행위로 인해 청와대에서 퇴출된 사람들이다. 퇴출까지 가지 않은 사례들, 비위 사실이 적발되고도 ‘연줄’로 살아남은 사례들이 있었을 것임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드러난 비위 사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전직 행정관 A 씨에게 환경부 법인카드를 넘겨준 B 비서관은 A 씨가 원직복귀 처리된 뒤에도 청와대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셈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청와대 직원이 관련 부처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는 말도 있다. “맘먹고 감찰조사를 실시할 경우 다른 청와대 직원들도 무사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기강해이 행태는 비단 청와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속속 확인되고 있다. 북한 무인항공기 파동에서도 국방부 등 안보당국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군 당국은 파주 무인항공기에 대해 “대공혐의점이 없다”고 밝혔다가 1주일 뒤 백령도에서 이와 비슷한 무인항공기가 한 대 더 발견되자 그제야 북한 관련성에 주목한 것이다.
군 당국의 엉터리 보고만 믿고 있었던 청와대는 파주 무인항공기 발견 9일 뒤에야 부랴부랴 NSC 회의를 열 수밖에 없었다. 군 당국은 조사 관계자들이 파주 무인항공기를 맨손으로 만졌다가 다수의 지문이 발견되자 내부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추태까지 보였다. 무사안일주의, 축소보고, 뒷북치기, 책임 떠넘기기 등 공직사회가 보여줄 수 있는 악습은 다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기강해이증후군’은 공교롭게도 청와대와 안보부처 등 소위 ‘힘 있는 곳’에 집중돼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공무원들의 골프까지 금지시킬 정도로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해 왔지만, 실제로는 등잔 밑에서부터 기강은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박 대통령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중국 정부의 공식문서까지 위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남재준 원장이나 관련 차장들을 경질한다는 얘기가 전혀 안 나오고 있다”면서 “잘못을 해도 문책하지 않으니 어떻게 기강이 바로잡히겠느냐”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