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시들’ 아시아 ‘열광’ 슈퍼히어로들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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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상암동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을 맡은 배우 크리스 에반스가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에 임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향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30일 마포대교에서 시작해 현재 서울 시내 곳곳에서 촬영을 진행 중인 <어벤져스2>로 촉발된 관심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이처럼 대규모로 한국에서 촬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2년 개봉한 액션 영화 <본 레거시>가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촬영한 적이 있지만 당시엔 주연배우들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약 1~2분 동안 이야기의 배경으로만 등장했다. <어벤져스2>의 상황은 다르다. 14일까지 예정된 촬영에는 총 1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주인공 크리스 에반스가 내한해 촬영에 나서는 건 물론 연기자 수현이 조연으로 캐스팅돼 한국인 과학자 역을 맡았다.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어벤져스2>에는 약 20분 분량으로 한국의 모습이 담긴다. 이런 약속 하에 영화진흥위원회는 외국영상물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어벤져스2>에 현금 30억 원을 지급했다. 외국 영상물이 한국에서 15일 이상 촬영할 경우, 총 사용 금액의 30%를 현금으로 지원한다는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불러올 경제 효과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은행이 2010년 내놓은 ‘산업연관표’를 기준으로 <어벤져스2> 촬영 이후 연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62만 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른 연간 소비지출 예상치는 876억 원이다. 영화의 전세계 개봉에 힘입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이란 긍정적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국이 <어벤져스2>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는 이유가 ‘돈’에 대한 기대치인 것처럼 <어벤져스2>가 한국 로케를 택한 이유 역시 ‘돈’의 영향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운데서도 세계 영화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흥행 장르는 영웅 캐릭터를 내세운 히어로무비다. 갈수록 극장 관객 수가 줄어드는 미국에 비해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급성장하는 아시아 영화시장은 할리우드 제작진에게 새로운 개척지이자 매력적인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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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마포대교 양방향 통행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이 진행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실제로 한국에서 히어로무비는 연간 2~3편씩 개봉하고 있다. 지난해 <아이언맨3>, <토르:다크월드>가 개봉해 각각 900만, 303만 관객을 모아 성공했다. 2009년 이후 5년 동안 한국에서 관객 200만 명 이상을 모은 히어로무비는 9편이나 된다. 900만 명을 동원한 <아이언맨3>를 필두로 <어벤져스1>(707만) <다크나이트 라이즈>(639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1>(485만) <아이언맨2>(442만) <토르>(303만) 등 거의 모든 히어로무비가 흥행에 성공했다. 히어로무비에 대한 지지가 확실한 한국에서 <어벤져스2>를 촬영할 경우 흥행은 물론 그에 따르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란 제작진의 예상은 어렵지 않다.
한국 못지않게 중국 영화시장 역시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3월 중순 미국영화협회가 발표한 2013년 영화산업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영화 극장 관객 수는 전년에 비해 2000만 명이 감소했다. ‘미국 내수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위기감이 높아진 지도 이미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큰손으로 부상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이미 할리우드는 중국의 영화 제작 자본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히어로무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가 전세계 개봉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을 첫 홍보 지역으로 택한 이유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이들은 베이징에 이어 싱가포르와 일본 도쿄로 프로모션 활동을 이어갔다. 아시아 나라에서의 영화 개봉은 4월 말로 잡힌 반면 미국 개봉은 5월 초다. 한국은 미국보다 2주가 앞선 24일 개봉한다. 할리우드 제작진이 ‘돈’ 되는 아시아 시장에 얼마나 주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3월 31일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 호텔에서 열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기자회견에서 만난 마크 웹 감독은 한국영화 시장을 향한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에 주인공들이 한국 음식을 놓고 대화하는 장면을 넣었다”며 “개봉하는 모든 나라의 버전에 그 장면을 그대로 담았다. 우리가 세계에 한국 음식을 홍보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 개봉 버전에 한해 한국 가요를 영화 마지막 장면에 삽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며 “한국을 영화에 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했다.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아이언맨>, <엑스맨> 시리즈를 만든 마블스튜디오의 아비 아라드 대표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서 촬영 중인 <어벤져스2>처럼 “또 다른 히어로 시리즈를 한국에서 촬영할 수 있다”며 “한국 영화가 대단한 수준이고, 영웅을 향한 한국 관객의 사랑을 잘 안다”고 했다.
아시아 영화시장의 급부상에 따라 히어로무비 제작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스파이더맨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베트맨은 앞서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다시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슈퍼맨의 새로운 이야기인 <맨 오브 스틸>도 현재 2편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주인공만 그대로 유지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리부트’ 형식의 영화들이다.
본편에서 벗어난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번외편 ‘스핀오프’ 제작 바람도 거세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악당들만 모은 <시니스터 식스>와 배트맨과 슈퍼맨, 원더우먼이 함께 나오는 <저스티스 리그>도 제작에 착수했다. 활발한 ‘공급’의 이면에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수요’ 기대치가 작용했다.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 한, 돈을 쏟아 붓는 영화는 계속된다는 의미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