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에게 향응을 제공한 이원호씨. 그는 로비하는 날마다 현금을 수억원씩 빼간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 ||
검찰 출신의 한 인사는 지난 12월4일 국회에서 특검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자 기자에게 이렇게 확신에 찬 전망을 내놓았다. 양길승 몰카 사건은 현재 청주지검에서 계속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취재진은 청주 현지를 방문,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양길승 몰카 파문을 전후로 한 당시 검찰과 경찰의 수사 자료 및 이원호씨의 사촌형과 오랜 친구 및 측근 등 핵심 인사들을 통해 구체적인 증언들을 입수했다.
이씨 주변의 한 인사는 “현재 이씨도 상당히 마음이 흔들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자신의 보호막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만약 이씨가 특검에 고해성사를 하면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국회 특검 재의결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될 당시의 정국은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과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과 관련된 의혹들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상황이었다. 최 전 비서관의 9백억 수수설, 이 전 실장의 95억 수수설도 나왔다.
대기업의 대선 비자금이라는 큰 덩어리를 만지던 대검 중수부에서도 이들에 관련된 수사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양길승 몰카 파문은 확연하게 뉴스의 핵심을 비켜나는 양상이었다. 심지어 야당 일각에서도 “양길승 몰카보다 오히려 강금원씨 관련 비리로 대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한 검찰 관계자가 사석에서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 가지 사안 중에서 제일 찜찜한 게 양길승 몰카 파문”이라고 말한 것은 눈길을 끈다.
대기업과 정치권 그리고 최도술 이광재씨 등에 대해 검찰이 가차없이 칼날을 휘두르는 것에 비한다면 양길승 파문에 대해서는 좀체 진도가 나가지도 못할 뿐더러 사건을 덮고자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는 까닭이다. 즉 ‘양길승 몰카’ 파문 수사에서만큼은 참여정부의 검찰다운 모습이 전혀 아니라는 지적이 내부 일각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길승 몰카 파문이 갖는 폭발력은 그 파장에 따라 청와대와 검찰 양측 모두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취재진은 청주 현지를 방문, 이씨의 오랜 측근들과 검찰 경찰 관계자들을 통해서 양길승 몰카 파문을 전후로 해서 있었던 갖가지 사건과 의혹들에게 대한 주변 인물의 증언과 당시 수사 내용 자료들을 상당 부분 입수했다.
앞으로 특검이 이씨와 관련해서 밝혀야 할 핵심 의혹 중 하나는 이씨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50억원의 현금이 과연 어디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 검찰 내부에서도 ‘찜찜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양길승 몰카 파문은 뉴스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원호씨의 로비 실체가 드러나면 청와대와 검찰 모두에 영향이 미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 ||
이들의 통장에서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0월11일부터 12월10일까지 모두 54억8천1백만원이 인출되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50억8천2백만원이 모두 현금으로 인출된 부분. 수표로 인출된 금액은 불과 4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액수가 많은 돈은 수표로 찾고 액수가 적은 돈은 현금으로 찾는 관례에 비추어 볼 때 50억원 이상이 대선 한두 달 전에 현금으로 몇차례에 걸쳐서 계속 인출된 점은 의문이다.
검찰에서는 이에 대해 “이씨가 인출해간 수표와 계좌를 추적했으나 특별한 혐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50억원 이상이 현금으로 인출된 것을 볼 때 검찰의 발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현금으로 인출된 것으로 표시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현금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며 은행 사정상 계좌이체나 수표로 나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 관계자는 “현금으로 나가면 ‘현’, 수표로 나가면 ‘자’ 등으로 구분해서 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 이후의 출금 내역도 눈에 띄는 부분. 이씨의 인출 경향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별되고 있는데, 대개 천만원대 단위의 돈을 수표로 자주 인출해 가다가도 한 번씩 수억원대의 목돈을 현금으로 인출해가는 것이 형태가 그것. 역시 상식을 벗어나는 인출 방식이다.
그런데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현금으로 인출된 날짜가 공교롭게도 이씨의 ‘로비’ 날짜와 겹친다는 점이다. 이씨는 4월17일 1억5천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했는데 이날은 바로 청남대 개방 행사 하루 전날로, 이씨가 양 전 실장과 따로 만남을 가진 날이었다. 양씨는 이날이 이씨와의 첫만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3억4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현금으로 인출된 날짜는 6월27일이다. 양길승 몰카 파문이 터지기 바로 하루 전날이다. 이후 7월10일과 11일 양일에 걸쳐 현금 6억6천5백만원이 빠져 나갔다. 일주일 전인 7월3일 서울 역삼동에서 이씨와 양 전 실장이 다시 만난 것이 최근 확인됐다. 날짜가 우연하게도 상당 부분 겹치는 셈이다.
그리고 또다른 의혹은 지난해 9월경 이씨가 진양볼링장 매각대금으로 24억5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이 돈은 계좌에 입금되지 않았다는 점. 이 돈의 행방도 묘연하다. 이들 두 가지 금액을 모두 합치면 80억원에 이른다.
한편 이씨와 노 대통령간의 잦은 만남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두 사람간의 만남에는 반드시 그 주선자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양 전 실장이 의심받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데 그 만남 횟수에 대해서도 당초 검찰 발표와 수사진들이 파악한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검찰은 이씨가 대선을 전후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네 차례의 만남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이씨 주변 관계자들의 진술과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으로 확인된 것만도 최소한 모두 여덟 차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7일과 12월10일 각각 이씨가 운영하는 리호호텔에서 노 후보 일행이 묵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노 당선자가 감사장을 전달하며 사진을 함께 찍은 것이 경찰의 압수수색에 의해 발견됐다는 수사 내용이 나왔다.
역시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지난해 12월25일 장남 건호씨 결혼식에 직접 참석한 이씨가 전날인 24일에도 노 당선자의 명륜동 자택을 방문했다는 진술이 있다. 이씨는 올해 2월8일 고양시 사법연수원 강당에서 있은 노 당선자의 딸 정연씨 결혼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2월25일 노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장과 4월17일 청남대 개방식에 이씨가 직접 참석한 것을 자랑삼아 지인들에게 밝혔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
당시 수사자료에는 이씨의 자택에 대한 네 차례의 압수수색 과정도 비교적 소상하게 상술되어 있었다. 6월26일과 7월2일, 11일, 16일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압수수색의 목적과 결과 그리고 특이점 등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압수수색 정보가 이미 유출된 듯함’이라는 특이사항이 기록돼 있었다.
▲ 검찰 내에 이원호씨 비호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던 김도훈 전 검사(오른쪽). 사진은 지난 10월 법사위 국감에 나온 김 전 검사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 ||
당시 가택 압수수색을 나간 충북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씨의 드레스룸 피아노 위에 노 대통령의 감사장과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를 윗선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엔 이씨의 조세포탈에 대한 혐의를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사진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당연히 압수 대상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영주 청주지검장은 지난 10월1일 국감에서 “이씨와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씨의 윗선 로비에 대해 “과연 민주당에만 줄을 대고 한나라당은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씨 주변의 한 관계자는 “지역 내에서 이씨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익히 돌고 있던 터라 한나라당에선 일부러 이씨를 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충북도지부의 한 관계자 역시 “지역구의 윤경식 의원은 청주에서만 10년이 넘게 변호사를 해온 터라 누구보다 이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돈을 받았겠느냐”고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 청주지역에서는 “이씨의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그나마 민주당에 돈을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행해진 베팅이 결과적으로는 기막히게 적중한 셈”이라는 여론이 팽배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