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무시·무언…정치에 발 담가봐야 얻을 것 없다’ 유체이탈화법 구사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이해 대국민담화를 가졌다. 사진제공=청와대
두 사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언행을 되짚어보면 야당의 이런 반응은 일리가 없지 않다. ‘무위·무시·무언의 3무 정치’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선 기초선거 공천폐지 공약 번복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을 대하듯 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자신의 대선 공약과 정반대로 공천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는 동안 박 대통령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결정이 내려진 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식의 ‘립서비스’조차 없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이 내놓은 유일한 유감 표명은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단 한 차례 사과의 뜻을 밝힌 게 유일하다.
박 대통령은 기초선거 공천 문제 논의를 위해 만나자는 안철수 대표의 제안도 무시했다. 공개적으로 단 한 차례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회담을 요구하며 청와대까지 찾아왔던 안 대표에게 공식 답변을 줄 때에도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박준우 정무수석을 통했다.
박 수석은 지난 4일 안 대표와 김한길 대표를 국회에서 만나 “기초선거 공천폐지 사안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로서,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라 여당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니 여야가 합의를 이뤄주기 바란다”며 “각 당이 6·4 지방선거 체제로 전환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나는 것은 선거 중립 등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민생과 국익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입장”이라고도 밝혔다.
자신의 대선 공약에 대해 ‘여야가 합의할 사안’이라며 공을 국회로 넘긴 것은 야당으로부터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난을 샀다.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공약할 당시에는 공직선거법 개정 사안이라는 점을 몰랐느냐”, “대통령 공약 중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해야 하는 사안이 아닌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더욱이 박 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야당 대표들을 만나다 보니 이날 ‘박 수석의 발언이 박 대통령의 메시지냐, 박 수석의 메시지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야당의 요구에 대해 박 대통령이 내놓은 답변은 없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면서도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북한제 추정 무인기가 우리나라를 전방위로 정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우리 군 당국이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방공망 및 지상 정찰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대한 공개 질타로 해석하는 게 전혀 무리가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군과 국가정보원 수뇌부에 대한 문책 여부에 대해서 청와대 기류는 부정적인 쪽에 기울어져 있다.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영공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전방위 정찰을 벌인 사실을 군 당국이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데다, 이번에도 초동대응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청와대 기류는 의외다. 군과 국정원이 파주에서 무인기가 처음 발견됐을 때에는 대공혐의점에 전혀 주목하지 않다가 백령도에서 추가로 무인기가 발견된 뒤에야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파주 무인기에 장착돼 있던 카메라에서는 청와대 바로 위 상공에 20여 초 동안 머물며 청와대 전경을 찍은 생생한 사진들이 발견됐다. 군과 국정원이 판단 미스 수준을 넘어 사건 은폐 의혹까지 살 만한 대목이다.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이전에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개입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의혹 사건 등을 대할 때의 태도와 비슷하게 보인다.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인터넷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여론 조작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도 박 대통령은 국정원에 자체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지시했을 뿐 관련자 문책에 나서지 않았다. 또 국정원 직원들이 간첩 수사 도중 중국의 공문서까지 위조해 가며 부족한 증거를 억지로 꿰맞추려 한 사실이 들통 났을 때에도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을 뿐이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3무 정치’에 대해 정치권 인사들과 전문가들은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의도적인 거리두기’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다른 사람, 특히 반대세력과 협의해서 해법을 찾는 ‘정치’보다는 여러 의견을 듣고 자신이 혼자 결단을 내리는 ‘통치’에 익숙하며 이를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를 보면 박 대통령은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개혁이나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적쇄신이든 개혁이든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할 뿐 야당이나 반대세력에게 등 떠밀려 가는 식으로는 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최근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해답을 내놓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3무 정치’와 지지율을 연결 짓기도 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의도 정치와 얽히면 얽힐수록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반면 해외 순방이나 민생 행보 등으로 거리두기를 할 때 지지율이 상승했다”며 “박 대통령이 왜 ‘대통령 대 야당’의 구도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