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왼쪽부터)이 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고 안상영 부산시장 영결식에 나란히 참석해 묵념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안상영 부산시장의 ‘옥중 자살’ 사건으로 열린우리당의 ‘부산 상륙작전’에 비상이 걸렸다. ‘정동영 체제’ 출범 후 지역에서 당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면서 다수 의석 확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던 것도 잠시, 공천을 둘러싼 내부 갈등 격화와 뒤이어 안 시장 자살 사건이 터지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특히 안 시장의 자살을 두고 “여권의 회유·압박이 빚어낸 정치적 타살”이라는 해석이 확산되면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속 광역단체장의 느닷없는 죽음에 충격에 빠졌던 한나라당도 시간이 지나면서 “안 시장이 사그라들었던 부산의 한나라당 지지세를 부활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며 ‘표정관리’에 나선 상태.
안 시장 사건 전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효과’가 부산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최소 6~7석, 최대 10석’이라는 의석 확보 전망을 내놓으며 잔뜩 고무된 상태였다.
앞서 언급한 K씨는 “전체 여론조사 추이에서 호남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청구와 ‘민주당 죽이기’ 논란에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영남권은 오히려 지지율이 더욱 올라갔다. 호남권에서의 ‘반(反) 열린우리당’ 정서가 영남에서는 ‘호남당 탈피’에 대한 기대치로 작용한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방송(PSB)이 1월28~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정당지지도 면에서 29.1%를 기록해 30.3%를 얻은 한나라당과 불과 1.2%포인트 차이를 보이며 대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당후보간 가상대결에서도 열린우리당이 27.8%를 나타내 한나라당(29.7%)을 바짝 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인2표제 투표시 지지정당에서는 격차가 0.7%포인트(한나라당 31.5%-열린우리당 30.8%)로 좁혀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 지지도 상승이라는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설 연휴(1월21~23일)를 전후해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부산 선거의 전망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서서히 대두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의 총선 출마로 대표되는 이른바 ‘부산판 총선 올인’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과 외부인사 영입을 둘러싼 중진과 소장파간 이견, 일부 중앙당 지도부 인사들의 무책임한 ‘낙하산 공천’ 발언 등 내부 문제점들이 일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지난 5일 고 안상영 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한 문재인 민정수석. |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복제해서라도 영입해 출마시키고 싶다”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영입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당 지도부가 총동원돼 문 수석을 입당시키는 데 발벗고 나섰으나 정작 본인은 “총선엔 절대 안 나간다. 외부 압력이 거세기는 하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며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총선 전략과 라인업을 둘러싼 중진-소장파간 견해차도 심각해지고 있는 양상. 김정길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과 총선 지원을 위해 얼마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직을 사퇴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등은 당선 가능성을 위주로 인물 영입과 공천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조성래 시지부장을 축으로 노무현 대통령 386측근들과 개혁당 출신들이 가세한 소장파들은 “전체 선거 판도를 흐트릴 우려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이들은 지난 연말 노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부산 연제 출마 뜻을 굳힌 민주당 김기재 의원의 열린우리당 입당을 강력 반대하고 나섰고, 이에 격분한 김 의원측이 “열린우리당 입당과 출마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또 신 전 부의장 등에 대해서도 “구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신 전 부의장은 자금모금 등 간접지원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흘려 신 전 부의장측을 격앙시키기도 했다.
지명도 있는 당내 인사들의 ‘부산 배치’ 문제도 내부 논란거리. 이철 전 의원의 ‘부산 행(行)’을 둘러싼 ‘잡음’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전 의원 문제는 그의 고교(경기고)-대학(서울대) 후배인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부산 북-강서 을에 민청학련 사형수 출신인 이 전 의원을 내세워 맞대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같은 당 김성호 의원은 ‘정 의원의 상대는 노혜경 시인뿐’이라고 반박하고 나서는가 하면, 열린우리당 부산 금정 지구당원들은 이 전 의원을 금정구에 출마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나서 혼란을 더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내부 혼선이 가중되고 있는 터에 4일 새벽 안 시장의 자살 사건이 전해지자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인 민경찬씨의 6백53억원 거액 펀드 조성 의혹까지 겹치면서 ‘반(反) 여권’ 기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우려다.
한 관계자는 “안 시장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직 시장이 그것도 감방에서 ‘억울하다’며 목숨을 끊은 이상 여권엔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도 안 시장 사건이 부산 총선 판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고심하기는 마찬가지.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한 사람의 불행한 죽음을 앞에 놓고 손익계산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안 시장의 옥중 자살문제를 갖고 부산 민심을 자극하려는 구태적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경계심을 표출했고, 김정길 상임중앙위원도 “가뜩이나 부산에서 지역구별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한 군데도 이기는 곳이 없는데 안 시장 자살 건까지 터져 상황이 더욱 어렵게 됐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반면 한나라당에선 4월 총선 때까지 안 시장 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입장. 한나라당은 특히 안 시장과 ‘50년 지기(知己)’인 최병렬 대표 등이 진두에 나서 안 시장 사건을 “여권의 ‘총선 올인’ 전략이 빚은 결과”로 규정하며 지역 선거 판도를 좌우할 최대 이슈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한 부산 재선 의원은 “공천 물갈이 때문에 지도부와 부산 의원들 간 갈등이 심각하긴 하지만, 안 시장 건에 총력대응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부산 전체적으로 안 시장 사건 이후 ‘그래도 한나라당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고무적이며, 공천문제만 잘 매듭된다면 선거 전망도 밝은 편이다”고 말했다.
지역 여론조사기관들도 안 시장 사건의 파장이 쉽게 가시지 않으리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K사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으로선 한창 상승세를 타는 시점에 안 시장 사건이라는 돌발 악재를 만나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 측근비리 국회 청문회와 특검에서 추가로 여권과 관련한 비리가 돌출될 경우 ‘마땅한 스타가 없다’는 여론과 맞물려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크게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으로선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총선 국면에서의 ‘바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