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달리는 남북관계 ‘건널목’ 될까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국제철도협력기구 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7년 만의 공공기관장 방북이기에 일각에서는 남북 철도 협력사업 재개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북한 내부와 접촉하고 있는 대북 학술기관 NK지식인연대 박건하 사무총장의 말이다. 실제 북한 사회에서 철도는 물류수송의 90%, 여객수송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육·해·공 수많은 운송시설 중 하나에 불과한 남한과는 쉽게 비교할 수 없다. 우리로 치면 장관급으로 북한 내각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철도상이 그 중에서도 핵심 요직인 점만 봐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현직인 전길수 철도상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당 지도부) 위원과 최고인민회의(국회) 대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권력자다.
북한의 철도요원은 북한 내부에서도 높은 급여와 대우를 받는 직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철도원이 되는 이른바 ‘대물림’ 현상이 흔하게 목격되기도 한다.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군을 앞세운 선군시대 최고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군부도 철도원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최연혜 사장의 이번 방북은 남한의 공공기관장으로서는 지난 2007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지만, 앞서의 북한 내부 사정을 고려해 본다면 왜 수많은 공공기관장 중 유독 철도 수장을 찍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또 공교롭게도 최연혜 사장은 지난 연말 발생한 철도파업 당시 북한 당국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은 인사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남조선인권대책협회의 명의로 <조선중앙통신>에 “남한 정부의 철도파업 탄압은 인권과 생존권, 민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파쇼적 탄압만행”이라고 힐난한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 최연혜 사장은 이른바 ‘파쇼 탄압의 장본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그를 초청했다는 것은 내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 숨겨진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현재 외교가 일각에서 이번 최연혜 사장의 방북을 계기로 그동안 부침에 시달렸던 남북 철도 협력사업의 재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최연혜 사장의 방북을 허가한 통일부는 “방북 승인 목적이 국제철도기구 회의 참석이므로 그 외 대북 접촉은 승인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비공식 접촉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박건하 사무총장은 “북한 내에서 철도의 비중은 무척이나 크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한계에 다다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노후화가 진행됐다. 주요 노선의 복선화 작업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침목은 썩을 대로 썩었다”며 “경제개혁 과제를 안고 있는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 철도 복구 사업은 핵심과제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북한 입장에서 가장 먼저 남한에 바랄 부분이 철도일 수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북한의 사정에 ‘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구상 중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다. 이는 남북 철도 복원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국제 철도 노선 구상을 골자로 한다. 이밖에도 코레일은 국내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을 기반으로 북한의 나진에서 러시아의 하산을 잇는 물류 거점 사업에 참여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걸림돌은 존재한다. 지난 2010년 천안암 피폭 이후 결의된 정부의 ‘5·24 대북사업 제재 조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북한 특유의 ‘라인 SOC(국토를 관통하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거부감 탓이다.
오랜 기간 경협사업에 몸담아온 한 사업가는 “북한 당국은 외부에 자신의 체제를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국제 경협도 통제된 특별구역 내 추진을 선호하는 까닭”이라며 “그런데 철도, 가스관, 통신 등 기반시설은 국토를 관통하는 공사가 진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 체제가 대외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북한이 철도 경협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건하 사무총장은 “철도 경협에 있어서 대외적으로 국토가 노출되는 것을 북한이 꺼려온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현재로서 북한 산업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철도 기반 시설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철도 경협에 있어서 남한의 인력 투입을 최소화하고 장비와 자재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최연혜 사장은 28일까지 평양에 머무르며 회의 일정을 소화한다. 장기간 냉각기에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까지 가중되고 있는 현 남북관계에서 어쩌면 최연혜 사장의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깜짝 발표가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