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은 많은데 식욕은 뚝, 왜일까
이재규 감독의 영화답게 영상미는 뛰어나다. 현빈과 정재영, 한지민, 조정석, 박성웅, 조재현, 김성령, 정은채 등 스타 군단의 연기도 수려하다. 그렇지만 한 편의 영화에 담아 두기에는 너무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반면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은 호흡이 긴 드라마에 적합해 보이는 데 반해 영화는 135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고려해 24시간 동안 벌어진 일로 줄거리를 국한하다보니 벌어진 부조화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영화의 큰 줄기는 단순한데 캐릭터 하나하나의 사연은 너무 풍성해서 미처 할 얘기를 다 하지 못하고 끝낸 것처럼 보인다.
최근 큰 흥행을 한 사극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와 비교해 보자. <광해>의 경우 이병헌과 류승룡이 큰 틀을 이루고 여기에 한효주와 김인권, 그리고 장광과 심은경 등이 조연이다. 한효주와 김인권이 주조연급이라면 장광과 심은경은 조연으로서의 양념 역할에 충실하다.
정조 암살 시도를 다룬 영화 <역린>은 다르다. 현빈이 중심이긴 하지만 정재영과 조정석, 정은채 등도 주연급에 가까울 만큼 비중이 크다. 여기에 한지민, 박성웅, 조재현, 김성령 등의 비중도 적지 않다.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서이숙 역시 상궁 역할을 자주 소화한 내공으로 나름의 비중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생각시 역할로 출연한 아역 배우마저 나름의 비중을 차지한다. ‘먹을거리가 너무 많아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배우들도 너무 단편적으로 활용했다. 대부분 과거에 봤던 그 배우의 모습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겉으론 까칠하지만 속내는 따뜻하고, 주위에 상궁과 내시도 두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기는 정조의 모습은 <시크릿가든>의 김주원과 닮았다. 정재영 역시 기존 영화 캐릭터 ‘동치성’으로 대표되는 말수 적지만 우직한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연기력에 대해선 이번에도 두말할 필요 없이 빼어나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엿보긴 힘들다.
또한 한지민은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선보인 악역 캐릭터를 답습하고 있는데 오히려 연기력은 <조선명탐정> 당시보다 강렬하지 않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배우는 정은채다. 그는 극의 반전을 쥐고 있는 신비스런 캐릭터를 적절하게 살려냈다. 정은채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만한 신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줬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이 영화 볼까 말까? 볼까 1. 현빈의 열성 팬이라면 추천. <시크릿가든>을 남기고 떠난 현빈이 군 복무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컴백작이다. 2. 영상미가 빼어난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추천. <다모>를 통해 퓨전 사극의 장을 연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 PD 시절부터 정평이 나 있던 영상미를 영화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3. 충무로의 샛별 정은채의 팬에게도 추천한다. 신예지만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다. 말까 1. 기본적으로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중반 이후엔 지루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차라리 16부작 미니시리즈였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16~20부작 미니시리즈를 2부작으로 압축해서 편집한 특집 드라마 같다. 2. 줄거리가 재밌고 결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몰입도가 높은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도 비추다. 3. 현빈의 육체미가 궁금해 보려는 이들에게도 비추다. 현빈의 근육질 몸매는 영화 도입부에서 딱 한 번 나올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