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가족’ 낙인… 삶이 지옥이었다
2008년 6월 8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이 CCTV에 찍힌 모습. 가토 도모히로가 칼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한 뒤 현장에서 체포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문에 가까운 날들이었다. 살인자의 가족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불행한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다.”
28세의 청년은 이렇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름은 가토 유지. 일본 범죄 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31)의 동생이었다.
비극의 시작은 2008년 6월 8일 일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5세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가토 도모히로는 도쿄 아키하바라에 트럭을 끌고 돌진, 3명을 숨지게 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어 차에서 내린 그는 흉기로 주변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찔렀고, 그중 4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사망자 7명 및 부상자 10명이 발생한 대참사로 기록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범행 동기였다. 범인은 “세상이 싫어졌고, 누구든 죽이고 싶었다”고 말해 무차별 살인이었음을 시인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전 직장에서 해고된 후 친구들에게 자주 “죽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심한 좌절감, 열등감에 빠져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에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범인과 아무 관련도 없는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악마와 같은 범행에 치를 떨었고, ‘도리마(길거리 악마)’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결국 2011년 3월 범인에게는 극형인 사형이 선고됐다.
사건 후 비난의 화살은 범인의 부모에게 집중적으로 쏠렸다. 가는 곳마다 ‘살인자를 키운 부모’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신용금고에 다녔던 아버지는 사직서를 내야만 했고, 집에는 협박과 괴롭힘의 전화가 잇따랐다. 기자의 방문도 끊이질 않았다. 가족들은 이사에 이사를 거듭, 두꺼운 커튼을 치고 전기불도 켜지 못한 채 최대한 몸을 숨기며 살아갔다.
한편 죄의식에 시달린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 한때는 누구도 면회할 수 없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틈만 나면 어머니는 “다 내 잘못이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다. 퇴원 후에는 친정으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려 했으나 외손자의 사건으로 마음이 약해진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불행도 겪었다.
자살한 동생이 남긴 A4사이즈 250장에 달하는 수기.
인터넷에는 형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연관검색어에 올라있었다. 학창시절 자신을 아는 동창생들에 의해 ‘살인자 동생의 과거는 이랬다’는 정보도 낱낱이 공개되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고향은 어디냐?” “형제 관계는?” 이런 평범한 대화마저도 그에게는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만약 가토 도모히로의 동생이라는 걸 알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대할까.’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가지뿐이었다. 사람들은 매번 그에게 사표를 강요했으며, 그는 원하는 대로 관두고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삶에도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그에게도 봄날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 물론 연인에게 ‘정체’를 털어놓는 데까지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술의 힘을 빌려 힘들게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녀는 “당신은 당신이다. 형과는 상관없다”며 위로해줬다.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렸고, 비로소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의 꿈은 얼마가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우선 여자 쪽 부모가 펄펄 뛰며 반대했다. 살인자 동생과는 절대 결혼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부모님을 설득하다 지친 그녀도 그를 떠나갔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이제 세상과는 단절된 채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어느덧 자신도 형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토록 형을 원망했지만, 내 안에도 분명 ‘형과 닮은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형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 가토 유지는 형의 사건을 되돌아본 수기를 작성해 잡지사 <주간겐다이>에 보내왔다. 그리고 1주일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가해자 가족도 분명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자 가족인 주제에 힘든 척하지 마라’ ‘가해자 가족은 고통 받을 자격조차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다만, 당사자로서 이 말은 전하고 싶다.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가해자 가족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주간겐다이>가 공개한 수기에는 가해자 가족의 괴로움과 고통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다.
사실 가토 유지는 죽기 전에 형과 만나기를 바랐다고 한다. 면회하고 싶은 마음에 형에게 5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형을 만나지 못했다. 가족의 면회를 형이 완강히 거부했던 것. 죄를 저지른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소식을 듣고 피고인 가토 도모히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여 ‘한번은 만날 걸 그랬다’며 후회하진 않았을지. 6년 전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은 여전히 피해자 가족은 물론 가해자 가족에게도 끝나지 않은 고통으로 남아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