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을 ‘선수’로 만든 분 아닙니까”
이종욱은 “두산과 FA계약이 결렬된 뒤 다른 팀이 아닌 NC를 선택한 건 자신을 키워준 김경문 감독님(작은 사진) 밑에서 다시 야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종욱은 인터뷰에 앞서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다섯 살된 딸을 둔 그로선 수학여행을 가다 졸지에 목숨을 잃은 학생들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욱은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세 차례 팀을 옮겼다. 처음 인연을 맺은 현대에 대해선 ‘아픔’으로, 그리고 두산 시절을 ‘행복’으로, 마지막 NC와 관련해선 ‘또 다른 행복’이라고 표현하는 그다.
“프로 생활이 만만치 않지만, 세 팀 중 지금 있는 이곳이 가장 힘든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잘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애 처음으로 거액의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 후론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FA 선수라는 타이틀이 나한테는 큰 짐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종욱은 시즌 초 저조한 타율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한 편이다. 김경문 감독이 오히려 이종욱을 챙기면서 부담 갖지 말 것을 주문하지만 이종욱은 ‘네’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까지 ‘네’는 아니었다.
“야구는 실패가 70% 이상이고, 그걸 줄이는 선수가 잘하는 선수다. 그러나 지금은 30%의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고 있다. 생각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나가면 무조건 잘할 것만 같은데…, 쉽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요한 순간에 한 방씩 치고 있다는 점이다.”
4월 23일 현재, 이종욱은 18경기 출장해 69타수 12안타, 타율 1할7푼4리를 기록했다. 낮은 타율이지만 타점은 팀 내 4번째로 많다. 특히 KIA전 연장 10회 결승타, 넥센전 9회 끝내기타 등 결승타만 4차례를 뽑아냈다.
“NC에는 유독 사연 있는 선수들이 많다. 나도 두산에 입단할 때는 연습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야구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홍성용처럼 죽기살기로 던지는 투수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반면에 그런 선수들이 잘하고, 좋은 성적을 내면 내가 더 기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생했을까,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이종욱은 두산과의 FA 계약이 결렬된 후 다른 팀이 아닌 NC를 택한 유일한 이유는 김경문 감독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다였다. 다른 건 안 들어왔다. 감독님만 보고 이 팀을 선택했다. 두산은 이종욱이란 선수를 있게 해준 팀이고, 김경문 감독님은 이종욱 선수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나로선 그런 분 밑에서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데 대해 감사했다. 하지만 두산을 떠나오며 팬들이 느꼈을 상실감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최대한 인터뷰도 자제한 편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다.”
이종욱은 다시 만난 김경문 감독이 두산 시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한다.
“두산에서는 정말 무서운 감독님이셨는데, 지금은 자상함과 배려가 넘쳐나신다.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웃음). 그래도 나는 감독님이 항상 어렵고 감독님 앞에선 긴장감이 배가된다.”
이종욱은 지난 11일 LG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올 시즌 처음으로 잠실구장을 찾았다. 홈이 아닌 원정 라커를 사용하며 그라운드를 밟을 때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단다.
이종욱이 4월 22~23일 SK와의 경기에서 공수에 걸쳐 활약하는 모습. 사진제공=NC다이노스
“라커 이용도, 거기서 밥을 먹는 것도 어색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두산 시절에도 라커는 홈과 원정을 번갈아 썼지만, NC 유니폼을 입고는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종욱은 올 시즌 프로야구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외국인 타자들이 국내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형성시킨 1등 공신이라고 말한다. 1점차 승부를 벌일 때 외국인 타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란다.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LG의 조쉬 벨이다. 외국인 타자들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특징인데, 조시 벨은 선구안도 뛰어나고 파워에다 수비까지 잘한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시즌 초반 넥센, SK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NC의 강점에 대한 이종욱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대답을 하면서 야구장 전광판에 떠 있는 문구를 손으로 가리킨다.
“저기 쓰여 있듯이 우리 팀은 거침없이 가는 팀이다. 경기에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열심히 치고 던지다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정말 NC는 매력적인 팀이다.”
‘도루왕’ 출신의 이종욱은 두산 시절 ‘육상부’ 대표선수였다. 그런데 NC도 그를 능가하는 ‘도루왕’들이 많다. 특히 1번 이종욱에 이어 2번을 치며 테이블세터를 이루는 김종호의 ‘발야구’에 대해 이종욱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종호는 센스가 뛰어나다.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머리를 쓰는 것보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도 나를 닮았다. 요즘 후배들은 도루가 ‘필수과목’인 모양이다. 모두 잘 달린다. 잘 훔치고. 하지만 내가 ‘연식’은 좀 돼도 후배들에게 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본다.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시즌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두산 베어스가 자신의 마지막 팀이었고, 두산에서 은퇴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는 이종욱. NC 선수인 그는 이제 ‘마지막 팀’을 거론하지 않는다.
“(손)시헌이랑 같은 날, 같이 은퇴할 수 있다면 어느 팀이 마지막이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 아닌가.”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