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언어 개선 해수부 청렴… 갖다붙이기도 가지가지
박근혜 대통령이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각 부처들은 이날 이후 규제개혁 관련 보도자료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사진제공=청와대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최고위원은 지난 4월 2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당내 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참사는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의 탐욕과 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규제완화를 전면에 건 정부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를 향해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시작해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하는 규제완화의 광풍을 멈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실제 노후화된 선박 세월호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여객선 제한 연령을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한 규제완화책의 수혜자였다. 이번 참사에 규제완화가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3월 20일 규제개혁 토론회 이후 최근까지 쏟아낸 보도자료는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일요신문>은 부처 특성상 규제개혁 및 완화와 관련해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통일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을 제외하고 14개 부처의 관련 보도자료(부처 자체 제작 뉴스 포함)를 면밀히 살펴봤다.
역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제규제개혁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3개 부처가 가장 많은 관련 보도자료를 쏟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토론회 이후 최근까지 부처 중 가장 많은 24개의 관련 자료를 내보냈다.
지난 2월 정보유출 관련 실언 이후 입지가 좁아진 현오석 기획재정부 부총리라지만, 그는 각종 공식 자리에서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규제개혁’을 언급하며 박근혜표 규제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제관계장관 간담회(3월 21일), 새누리당 지도부(3월 21일), 청년 고용 타운홀 미팅(4월 11일) 등 국내 공식 행사는 물론 외신클럽 간담회(3월 25일), G20 재무장관회의(4월 10일), IMF 회의(4월 13일) 등 국제회의에서도 습관처럼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관련기관인 해양수산부도 박근혜표 규제개혁에 적극적인 부처 중 하나다. 토론회 이후 해양수산부는 특별민관합동규제개선단을 가동하는 한편 국정 어젠다 중 규제개혁을 중요과제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해양 분야의 또 다른 재난이라 할 수 있는 적조의 구제물질 실용화 평가기간 단축(4월 3일), 크루즈에 탑승하는 연예인의 탑승 기준을 낮추는 예선업 규제완화(4월 7일), 마리나산업 규제개선(4월 8일) 등 각종 실질적 사례와 성과를 앞 다투어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규제개혁 및 완화에 적극적인 부처로 꼽힌다. 국토교통부는 ‘서승환 장관 규제개혁에 팔 걷고 나서(3월 23일)’, ‘서승환 장관, 중소기업 규제 애로사항 청취(4월 8일)’ 등 서 장관의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와 적극성을 내세우는 보도자료를 잇달아 내는 한편 장관이 직접 부처 규제에 대해 16개 등급으로 나눠 기존규제 감축 및 신설규제 억제를 통합 관리하는 ‘규제총점관리제(4월 4일)’를 마련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아예 홈페이지 메뉴 상단에 ‘규제개혁’ 페이지를 마련했으며 농식품산업 창업에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일선 종사자들로부터 특별 공모하기로 한 데 이어 세월호 참사 당일 규제개혁추진계획을 발표(4월 16일)해 눈길을 끌었다.
<일요신문>의 각 부처 보도자료 분석 결과 이해하기 어렵거나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언어개선’ 보도자료였다. 문체부는 지난 4월 3일 “각 부처 대변인들, 보도자료 ‘쉽고 바른 말’ 쓰기를 권고했다”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문체부는 이 보도자료에서 “공공기관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가 국민이 정책에 편하게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규제가 될 수 있다”며 “공공기관의 어려운 언어 개선은 규제 개혁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언어개선’을 ‘규제개혁’과 연결 지은 것은 터무니없고 억지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4월 7일 부처 전 직원에 보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공개서한도 비슷한 사례다. 이 장관은 서한을 통해 직원들에 ‘청렴실천’을 당부했는데 “규제개혁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청렴’”이라고 주장했다. 규제개혁과 ‘청렴실천’을 동일시하는 비논리적 주장이었다.
국토교통부의 ‘서민생계용 푸드트럭 상반기 중 합법화(3월 28일)’는 토론회 당시에도 언급된 사안으로 단 1주일 만에 후속조치가 나온 셈이지만 지금까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생계용 트럭조차 살 형편이 안 되는 노점상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그 골자다. 현재까지도 단속의 대상인 노점상들은 이를 두고 ‘형평성 문제’를 언급하며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태현 인턴기자
오락가락 정책기조 창조경제→공공개혁→규제완화→안전대책 대통령 말 한마디에 널뛴다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토론회 이후 과열양상을 띠고 있는 각 부처의 규제개혁 충성경쟁은 사실 처음 목격하는 현상은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 각 부처의 이러한 성과내기 정책 동향과 정책 쏠림 현상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줄곧 나타났다. 지난 연말과 올 초 사이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본격 언급하면서 각 부처 간 경쟁이 공공개혁으로 옮겨 붙었다. 철도개혁부터 시작된 각 부처 간 공공개혁은 부채 탕감, 방만 경영 해소책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열기를 더했다. 그러던 것이 토론회 이후 각종 규제가 박 대통령에 의해 ‘암 덩어리’로 지적되며 ‘규제완화 광풍’으로 옮겨 붙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이제 그마저도 ‘안전대책 강구’로 선회할 기미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난 정부 규제완화가 언급되면서 각 부처는 각종 안전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세월호 참사와 직접 연결되는 해수부와 안전행정부는 이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에 나섰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철도와 도로에 대한 안전점검을,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통신 분야 재난을 대비해 ‘방송통신 재난관리 매뉴얼 체계’를 발주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놀아나는 나라다. 행태만 놓고 보면 북한 지도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힐난하며 “물론 각 정부마다 ‘정책기조’라는 것이 있어 이에 따라 각 부처가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그 기조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대통령이 언급하면 각 부처는 추진전략과 대응책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TF팀을 만들고 광풍이 잦아들면 다시 선회하는 행태를 반복한다. 각 부처는 정책기조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의 현장실정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관된 정책을 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