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린 친박… 난세에 인물이 없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무혈입성’이 예고되는 이완구 의원. 세월호 참사 여파로 모두 출마를 포기하는 가운데 이 의원도 발 빼기 어려워 ‘고’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종현 기자
뜨겁게 달아오를 뻔했던 원내대표 경선이 뜨뜻미지근해진 것은 세월호 참사 여파가 큰 이유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세월호 덕분에 친박계의 실체가 덜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다. 세월호 이슈가 전국을 덮었다”면서도 잠시 뜸을 들여 “그래서 이번 원내대표는 혹 붙일 일만 남은…, 좀 적나라하게 말해 설거지용”이라 비유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친박계에 사람이 없다. 장이 섰는데 아무도 숟가락을 내밀지 않는다. 이런 참혹하고 잔인한 정국 속에서 당에서만큼은 경쟁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들을 하시는데 사실은 나설 사람도,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다. 3선 이상 친박계 핵심 한번 짚어볼까? (제19대 국회수첩을 꺼내 보여주며) 봐라, 누가 인기가 있나? 누가 세를 가지고 있나? 후보군이 없는 것은 지금 나서서 이완구 의원을 이길 것 같지가 않아서다. 이 의원은 벌써 의원회관을 두 바퀴나 돌았다. 다른 이유가 없다.”
친박계가 이권에만 욕심이 있지 희생한 적은 없다는 말도 나왔다. 내년 5월 나올 4기 원내대표는 20대 총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원내대표는 힘 한번 써볼 선거도 없고 당 대표로 출마할 기회도 없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징검다리 땜빵용”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공식석상에서 발언은 삼가지만 여권 내부는 지금 패배감이 만연한 분위기다. 이 분위기로 가서는 TK(대구·경북)를 빼고는 전 지역에서 ‘곡소리’가 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여권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이런 분석을 해줬다.
“원내대표가 되면 곧바로 선거대책위원장이 된다.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면 비대위원장이 된다. 선전할 것 같았던 지방선거가 말 그대로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인데 누가 나서겠는가.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우지는 않겠지만, 첫 스텝부터 꼬인 꼴이 된다. 이 의원도 발을 빼기 어려우니 고(Go) 하는 것이지 지금 무슨 신이 나겠는가. 난국을 수습하면서 지방선거도 지휘해야 하는데 그런 이중고를 누가 자처하겠나.”
심재철, 정갑윤, 원유철 등 4선 의원과 3선의 유기준 의원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었지만 완전히 발을 뺀 모양새다. 정 의원은 국회 부의장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당 비주류 사이에선 친박계에서 멀어진 유승민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마저 없던 일이 됐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고 있는 친박계 의원실 한 보좌관은 “해마다 원내대표 경선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왔는가. 단일화하고 교통정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경선 없는 추대?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 못하다. 물렁물렁한 여당 그 자체다. 활기도 활력도 다 잃었다. 이럴 때가 없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정책위의장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포기한 의원도 있다고 전해진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현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판에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인물이 없다는 푸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1기 원내대표 경선은 4파전(이종걸, 노영민, 박영선, 최재성)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만만한 이가 없단다. 특히 ‘똑순이, 저격수’로 불리는 박영선 의원이 첫 여성 원내대표를 거론하는 마당이어서 “그녀와 싸워서 이길 자 누구냐”는 분위기도 싸늘한 여당 원내대표 경선에 한몫했다고 전해진다.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돼 왔던 한 의원은 이런 말을 해줬다.
“지금 당이 청와대 방패막이한다고 난리다. 당이 완전히 죽어 있는 마당에 원내대표에 나서서 무슨 득이 있나. 경쟁이 없다는 건 갑갑한 노릇이지만 (내가) 나서기는 진짜 어려운 분위기다. 이 의원이 대야 관계를 잘 풀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누가 나와도 잘 풀어가기가 힘들다.”
이완구-주호영 원내사령탑은 하반기 국회의 집권 여당 균형추가 된다. 충청-TK 조합이라는 퍼즐 하나가 맞춰지면서 차기 당 권력구도가 재편되는 일만 남았다. 남은 곳은 수도권과 PK(부산·경남). 그래서 여의도 정가에서는 김무성 의원의 당권 획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청원 의원의 ‘팽’설도 제법 설득력 있게 회자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권 한 관계자의 관측이다.
“충청 출신의 서청원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서면 ‘충청 독식론, 충청권 쏠림’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수도권과 PK 의원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충청을 배제하자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 MS(김무성 의원)에게 유리하다. 원내는 충청, 당권은 영남 구도가 되지 않겠나.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청와대 파트너십보다 여당 본색 찾기가 화두가 된다. 비박근혜계가 당권을 잡아야 일단 명분이 서는 것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으로선 정권재창출보다 20대 국회 재입성에 더 목말라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더해 박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푸념도 등장했다.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일부 비판적 친박계에서 “박 대통령이 사람을 키우지 않아 사달이 났다”는 말을 사석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완구 의원 추대론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반면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선 우왕좌왕이다.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부대표단, 원내대변인 등 원내직 임명, 하반기 국회 상임위 배속, 상임위원장 선정 등 그나마 인사권을 원내대표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노출에 목말라 했던 비례대표 사이에서도 줄서기가 연출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이번 원내대표단에 별 효용을 기대할 수 없어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는 의원들도 많다는 전언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현주소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