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당을 강력 비판한 추미애 상임중앙위원 | ||
추 위원이 박상천 전 대표, 정균환 전 원내총무 등 구주류(정통모임) 공천 배제 등 ‘공천 혁명’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를 강력 비판한 데 대해 당 안팎의 ‘역풍’이 예상보다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
추 위원이 ‘탈당 불사’를 천명하며 제기한 주장에 대해 소장파 의원들이 지지에 나선 반면 정통모임측은 물론 조순형 대표와 한화갑 전 대표, 김경재 상임중앙위원 등 ‘우군’이었던 중진들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극단적인 세 대결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일부에선 이번 사건을 ‘추미애 파동’으로 부르며, 추 위원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추 위원 주장을 살펴보자.
공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당무를 거부해온 추 위원이 모처럼 서울 여의도 당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 19일. 당사 도착 후 곧장 기자실로 직행한 추 위원은 당내 중진들을 겨냥한 좌충우돌성 ‘폭탄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추 위원은 먼저 “당 안팎으로 불어닥치는 강한 외풍에도 당 지도부는 모른 척 안주하고 한줌 안되는 당내 권력 사수에 집착하고 있다”며 조 대표를 강력 비판했다.
회견 후엔 조 대표를 “보수적인 분”이라며 날을 세웠고, “당내 고질병으로 번져 있는 온정주의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헤쳐나가지 못하고 공천 부적격자를 가려내지도 않고 시간만 끈다면 당은 시한부 존재에 불과하고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극언’에 가까운 얘기도 내뱉었다.
한 전 대표도 추 위원의 공격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한 전 대표의 현 지역구(전남 무안-신안) ‘U턴’에 반대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 추 위원은 그의 옥중 출마에 대해 “정치불신에 가득 찬 성난 민심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당의 사활적 문제에 관한 것인 만큼 절대 강행해선 안된다”고 일갈했다.
2002년 대선 당시부터 ‘적대적 관계’가 계속됐던 후단협-정통모임측엔 ‘부역’(附逆)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공천 배제를 주장했다.
“민주당 후보를 내고도 다른 당 후보에게 부역한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도 지키지 않은 분과 분당에 핵심적인 책임 있는 분들에 대한 공천은 절대 불가하고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한 후 핵심 타깃이 박상천 전 대표와 정균환 전 원내총무임을 숨기지 않았던 것. 그러면서 추 위원은 “(이상과 같은) 저의 마지막 목소리가 수용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상황에 따라 탈당 등 중대결단을 내릴 것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 지난 19일 당을 강력 비판한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에 대해 조순형 대표, 한화갑, 박상천 전 대표(왼쪽부터)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현 기자 | ||
당장 조 대표가 다음날(20일) 발끈하고 나섰다. 그는 추 위원이 민주당을 ‘시한부 존재’ ‘역사의 박물관’ 등으로 표현한 데 대해 “자기가 몸담고 있는 당을 그렇게 격하하는 것은 자학행위”라고 비판한 뒤 “전도 유망하고 큰 뜻을 품은 분이 정제된 표현을 써야지 ‘부역’ 등의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못마땅했다.
또 ‘기득권’ 주장에는 “당이 빚더미에 올라 있는데 무슨 당내 권력과 기득권이 있겠느냐”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추 위원에 우호적이었던 중도파 중진들의 반응도 차갑긴 마찬가지. 한 전 대표는 “독불장군은 성공하지 못한다”며 일침을 놨고, 김경재 상임중앙위원도 “(추 위원) 단독 선대위원장 체제를 선호했지만 이렇게 안정감이 없어선 선대위원장을 할 수 있겠느냐. 추 위원 정치 생애에서 이번이 가장 큰 실수”라고 가세했다.
‘청산대상’으로 몰린 정통모임측 반발은 더욱더 격렬했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총무는 각각 “분당 책임이 민주당을 지킨 사람에 있다는 주장은 소도 웃을 해괴한 얘기” “내부를 공격하고 상처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점잖게 대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유용태 원내대표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해도 대꾸를 안했는데, 계속 이렇게 하면 더는 용납하지 않고 정면대응을 하겠다”고 흥분했고, 최명헌 의원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자꾸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고 가세했다.
정통모임측은 급기야 22일 밤 긴급 회동을 가져 “분열주의자 추미애는 정체성을 명확히 밝혀라”(김충조 의원), “추미애, 그런 사람 필요없다.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이윤수 의원)는 등의 격앙된 반응 속에 ‘출당’까지 요구할 태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중진들의 당내 반발이 격렬해지면서 추 위원이 과연 무슨 의도에서 ‘일을 저질렀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추 위원측은 최근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나라당과의 연합이나 합당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거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출신으로 박상천-정균환 라인인 유 원내대표와 민정계 성향의 강운태 사무총장이 합작, 권력분점을 추진하려는 기류를 저지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배후세력을 ‘응징’하려 했다는 것. 추 위원은 이와 관련, “당 일각에서 조 대표를 대통령으로 하는 개헌론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역(逆)으로’ 추 위원이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되자 탈당한 후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들과 손을 잡고 이른바 ‘수도권 신당’을 만들기 위해 ‘명분쌓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은 “추 위원이 아무래도 탈당을 결심한 것 같다”고 했고, 한 핵심 당직자도 “당론보다는 ‘개인 플레이’만 계속해 온 추 위원이 다른 목표를 만든 것 아니냐”며 가세했다.
일각에선 직설적인 언행이 몸에 밴 추 위원의 기질과 이번 행동을 연관지어 일종의 ‘우발행동’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 추 위원은 2001년 7월 소설가 이문열씨와 벌인 ‘지식인 곡학아세(曲學阿世)’ 논쟁과 관련, 취중에 기자들에게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등의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 2002년 4월27일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6등을 한 후엔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며칠간 당 회의에 불참해 눈길을 끈 바 있다.
한편에선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추 위원의 거침없는 언행과 자주 토라지는 성격이 그의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는 추 위원이 지난해 1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철새 의원들끼리 원내대표를 경쟁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설훈 의원을 부추겨 막판에 출마하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추 위원의 행동이 결국 경선에서 중도파인 이용삼 의원의 사퇴를 불렀고, 그 결과 정통모임측 유용태 의원이 당선돼 오늘과 같은 당내 분란의 원천이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무슨 불만만 있으면 당무를 거부했다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도 중진 정치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