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사의 규모는 지금까지 구속 및 불구속 기소된 정치인이 19명에 달하고, 수사에 투입된 인력이 검사 20여 명과 수사관 등 총 1백여 명에 이르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워낙 대형 사건이다 보니 수사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우여곡절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수사의 막판 최대 하이라이트는 노무현 캠프에 삼성그룹의 불법 자금 30억원이 유입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일주일 정도 앞둔 이달 초 삼성이 노 캠프의 안희정씨에게 30억원을 전달했다는 단서를 확보했다.
“5대 그룹이 한나라당과 노캠프에 제공한 돈이 ‘7백32억원 대 0’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한나라당의 ‘편파 수사’ 주장에 속을 끓여온 수사팀이 일제히 쾌재를 부른 것은 당연했다. 송광수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팀에 발표 때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수사팀은 곧바로 벽에 부닥쳤다. 삼성그룹과 안희정씨측이 모두 자금수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거나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때문에 수사발표를 일주일 정도 연기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삼성그룹 구조본부의 김인주 사장은 음식물을 토하면서까지 ‘말할 내용이 없다’고 버텼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검찰이 끝내 안희정씨로부터 “삼성에서 채권 15억원과 현금 15억원을 전달받았다”는 자백을 받아낸 것은 수사발표를 불과 12시간 정도 남겨놓은 지난 7일 밤 11시30분께였다고 한다.
불법 자금을 건넨 재벌기업들이 수사를 받는 태도도 천차만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비협조’로 가장 수사팀의 애를 먹인 기업 중 하나는 삼성이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수사발표 뒤 한 사석에서 “삼성은 수사팀이 먼저 증거를 들이대기 전에는 절대로 시인을 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중수부장은 “미국에 체류중이던 이학수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불러들이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며 “이건희 회장을 통해 설득을 한 끝에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고 ‘뒷얘기’를 털어놨다.
미국으로 출국해 돌아오지 않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변호인 등을 통해 수사팀의 ‘선처’ 가능성을 탐문하며 귀국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의 한 측근은 검찰에서 “김 회장이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면 소문이 나기 쉽고, 직접 돈을 줘야 받는 측(한나라당)도 안심을 할 것 같아 본인이 전달했다고 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동안 한나라당에 전달한 1백억원이 ‘왕회장’ 즉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인 비자금이었다고 주장해온 현대차그룹은 최근 태도를 바꿔 ‘진짜 출처’를 실토하는 문제를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수사팀 관계자는 “자기들이 생각해도 ‘왕회장’ 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기업체들 가운데 가장 ‘운’이 없는 곳으로 오너의 구속수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부영과 동부그룹을 지목했다.
안 부장은 “부영은 비자금이, 동부그룹은 기업지배 구조상 문제가 돼 각각 수사를 맡은 남기춘 중수1과장과 이인규 부장검사가 흥분하고 있다”며 “두 기업 모두 무서운 검사들한테 제대로 걸렸다. 수사검사 복이 없다고 해야지”라고 ‘동정’을 표시했다.
수사팀이 구속하면서 가장 안쓰러워 한 정치인은 이재정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200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화건설로부터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고 10억원 상당의 채권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구형받고, 법원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검찰의 한 중간 간부는 “한나라당 사람들 중에는 동정이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 의원은 인간적으로 안타까웠다”며 “일부 검사는 불구속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오히려 열린우리당 소속이라 구속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성공회 신부 출신으로서 이미지가 깨끗한 데다 한화 자금을 받아서 당에 입금하는 ‘단순 전달자’ 구실을 한 점 등이 수사팀의 동정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받던 일부 기업체 임원들이 아직도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대검 수사팀을 상대로 ‘자살 협박’을 한 일화도 전해진다. 5대그룹의 한 대기업 간부는 검찰의 고강도 추궁이 계속되자 “정말 이렇게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또 다른 기업인은 “집에 유서를 써놓고 왔다”고 말해 수사팀을 아연 긴장케 했다고 한다. 삼성의 김인주 사장처럼 조사를 받던 중 구토를 일으켜 검찰을 당혹스럽게 한 경우도 있었다.
기업체 수사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검사로는 원주지청장 재직 중 대검으로 징발당한 이인규 부장검사가 꼽힌다. 수사 사령탑인 안대희 중수부장은 부하 검사들을 평가하면서 “기업체 수사의 1등 공신은 이인규 청장”이라며 “그의 기업수사에 대한 노하우는 탄복할 정도며, ‘기업의 저승사자’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 중수부장은 이어 “SK 수사 등을 맡았던 남기춘 중수1과장은 우직하고 저돌적이며 정의감이 강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수사를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의 불법 자금을 수사해 ‘차떼기’ 확인 등 혁혁한 성과를 올린 유재만 중수2과장에 대해서는 “차분하고 합리적인 데 운까지 따랐다”며 “전쟁에서는 지장, 덕장보다도 운장(運將)이 최고 아니냐”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또 썬앤문 사건과 굿머니 사건 등을 수사한 김수남 중수3과장에 대해 “별동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에 얽힌 뒷얘기도 화제거리다. 김 의원은 대선 이후 관리해온 삼성 채권 10억원을 하필 서정우 변호사가 검찰에 구속되던 날 현금으로 바꾼 사실이 드러났는데, 나중에 수사팀에 “내가 귀신에 씌었던 것 같다”며 자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특수수사 기술 측면에서 이번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지금까지 좀처럼 접근이 쉽지 않아서 ‘지하자금의 판도라 상자’로 불리던 사채시장 수사기법을 대폭 진전시켰다.
안 중수부장이 “현대 비자금 수사 당시 박지원, 권노갑씨 돈을 추적하면서 사채시장을 완전히 뒤집었는데 그 노하우와 인맥이 작용해 이번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채시장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로 현금과 마찬가지로 자금 추적이 불가능한 무기명채권의 출처를 캐는 게 가능해졌으며, 그 덕분에 3백억원대의 삼성그룹 채권이 정치권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수사팀은 사채시장 수사 과정에서 전재용씨가 관리해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1백70억원을 찾아내는 부수적인 소득까지 챙길 수 있었다. 검찰은 이미 드러난 비자금 이외에 꼬리가 잡힌 전두환씨의 남은 비자금도 계속 추적중인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사 추이가 주목된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