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왼쪽)의 조기부활설이 설득력있게 퍼지고 있다. 반면 안희정씨(오른쪽)는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 ||
지난해 9월 초 여권 내부의 퇴진 압력에 밀려 청와대를 떠난 뒤 썬앤문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전달 혐의 등으로 검찰과 특검 조사까지 받고 있는 이광재 전 실장. 하지만 최근 청와대 안팎에선 이 전 실장의 ‘조기 부활설’이 설득력 있게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반면 이 전 실장과 ‘경쟁관계’에 있던 안희정씨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점차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신임 비서실장에 연세대 총장을 맡고 있던 김우식 교수(화공과)를 임명했다. 정치권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내부적으론 상당히 오래전부터 거명돼왔고 높은 점수를 얻고 있긴 했지만 ‘설마’했던 청와대 인사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전혀 의외의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청와대 안팎에선 김 실장 인사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이미 지난해 말 노 대통령이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고 김 실장 스스로 밝혔지만 일각에선 이 전 실장의 ‘작품’이라는 얘기도 솔솔 흘러나왔다.
여기에는 김 실장이 이 전 실장의 연세대 화공과 은사였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게다가 지난해 당시 김 총장이 연세대 출신 청와대 비서관들을 모아 식사까지 대접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 같은 ‘설’(說)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
물론 그 자리에 이 전 실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선 김 실장과 이 전 실장 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은근히 이 전 실장의 ‘역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런 시각엔 이 전 실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국정상황실 문용욱 행정관이 김 실장의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겨간 것도 한몫했다.
이 전 실장을 둘러싼 ‘설’은 또 있다. 국세청 안팎에선 최근 인사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기업인 P씨의 사돈이 당초 유력 후보로 거명되던 인사를 제치고 주요 직책에 전격 기용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고 한다.
국세청 관계자나 청와대 인사들은 한결같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이번 국세청 인사에 대해서도 이 전 실장과 관련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인사의 딸이 이 전 실장의 추천으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근무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실장이 실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정황상 여전히 이 전 실장이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여기에 검찰 조사 후 불구속 기소로 풀려난 뒤 특검 조사에 이어 국회 청문회에까지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실장이 이번 총선 출마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의 주변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와중에 김진흥 특검팀에서 공교롭게도 이 전 실장이 연루된 ‘썬앤문’ 사건을 담당했던 특검보와 파견검사 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이 전 실장에 대한 조사는 수사기한이 연장된다해도 사실상 막을 내린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을 정치권 일각에선 한때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이 전 실장에 대해 정보 독점과 검찰 인사 개입 등을 이유로 사퇴할 것을 요구한 것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파동이 특검보가 파견검사의 수사 방해 등을 이유로 사퇴했다는 점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실장은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라는 이중의 파고를 무난히 헤쳐나가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이는 이 전 실장과 동지이자 경쟁 관계에 놓였던 노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씨가 점차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전 실장은 비록 일절 언론과의 접촉이나 노출을 꺼리며 몸을 한껏 낮추고 있지만 여권 내부에선 그의 ‘조기 부활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하다.
여권 한 인사는 “기획 능력이 뛰어나고 치밀한 이 전 실장이 쉽게 무너지겠나”라며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시련을 이 전 실장이 잘 헤쳐나가고 있어 이번 총선에서 화려하게 정치권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전 실장의 막후 역할론에 대해 ‘자가발전’이라며 폄하하는 평가도 있다. 청와대 한 핵심인사는 “이 전 실장 주변 일부 인사들이 이 전 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향후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이 전 실장이 이름 없는 공기업 인사에서도 수차례 물 먹는 것을 목격했었는데 비서실장이나 고위 공직자 인사에 막후에서 개입했다는 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 전 실장이 안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상당히 치밀한 대응으로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전 실장이 최근 물밑 행보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도 검찰, 특검 수사에 대한 자신감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전 실장과 10여 년간 끊임없이 경쟁관계에 놓였던 안씨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기업들로부터 받은 불법 자금 규모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최근 재판 과정에서는 특유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언론의 집중타를 맞았다. 자신이 받은 자금을 ‘향토 장학금’이라고 표현한 데 이어 자신을 이수성 전 총리에 비유한 것.
당초 청와대 안팎에선 안씨에 대해 동정적인 기류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나라종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만 해도 노 대통령은 “내 동업자”라면서 변함없는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무렵 청와대 386들의 기류는 싸늘했다. 안씨가 검찰에서 노 대통령 관련 부분에 대해 너무 많은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구속 영장이 기각돼 풀려난 뒤 다시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검찰에 불려가면서 안씨는 이 같은 청와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노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내가 모두 안고 가겠다”고 했고 청와대 분위기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안씨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추가 자금 수수 규모가 늘어났고 최근 재판 과정에서의 돌출적인 언행이 이어지면서 청와대 안팎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청와대 386 출신 한 핵심인사는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안씨가 저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면서 “겸허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는데 저런 식으로 국민이나 재판부를 자극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짓”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안씨의 개인 비리 차원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의혹의 시선도 있긴 하지만 어찌됐건 안씨는 불법 대선자금 유용 혐의와 함께 거침없는 언행으로 인해 ‘노캠프’ 핵심에서도 점차 멀어져가는 양상이다. ‘고생은 함께해도 영광은 함께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은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