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다. 패배자는 역사적 기록에서 외면받거나 기억에서 통째로 잊힌다.
저자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는 <역사의 오류>를 통해 세계사의 의혹 50가지를 검증함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이번에는 <위대한 실패>를 통해 실패에 그친 거대 프로젝트 12개를 선별해 그 의도와 문제점부터 효과와 의미까지 상세하게 조명한다.
1920년대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도 모두 가능했던 소련. 동식물과 인간의 유전형질을 연구해 현대 국가로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목적으로 유전학이 급부상하며 전무후무한 일이 실행된다. 바로 인간과 원숭이의 교배 실험이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시대적 분위기, 미흡한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과대망상에 가까운 과학관이 횡행하던 시기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지중해댐을 통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이어보려던 아틀란트로파 계획, 유럽을 가로질러 달리는 2층짜리 호텔열차를 선언한 히틀러의 광궤철도, 시베리아 전역의 강줄기 흐름을 돌려놓겠다던 다비도프 계획도 인간의 오만과 과신에서 비롯된 무모한 사례다.
반면 세상을 바꿔보려는 감탄스러운 노력도 있다. ‘1주일 10일’의 새 시대를 선언한 프랑스의 혁명력, 세계 공용어를 꿈꿨던 에스페란토, 지금까지 진행 중인 소아마비 근절 계획 등이다.
주류 역사에 대해 줄곧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과연 사실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해온 저자는 이처럼 역사에서 기억해주지 않는 사건들을 좇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충동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 안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스스로를 과신하고 폭주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대실패작으로 결론이 났다는 건 오히려 좀 더 야심찬 아이디어였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미완의 개혁은 그 가치를 재조명받아야 하고 광기의 프로젝트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까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장혜경 옮김. 율리시즈.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7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