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추미애 꺾고 우원식 선출…명심 견제 및 추미애 비토기류 복합 작용 나비효과
거대야당의 선택은 우원식이었다. 5월 16일 민주당 당선자 총회에서 서울 노원을에 기반을 두고 5선에 성공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5월 12일 친명계 조정식 정성호 의원이 국회의장 레이스에서 중도하차하면서 추미애 당선인으로 교통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민주당 당선인들이 우원식 의원을 선택하면서 국면이 반전됐다.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은 “국회의장으로서 국민에 도움이 되는가, 옳은가를 기준으로 제22대 국회 전반기를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6월 5일 예정된 제22대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친 뒤 우 의원은 최종적으로 국회의장 직함을 달게 된다.
당선인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추미애 대세론’이 거셌다. 추미애 당선인이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의장 타이틀을 달 것이란 데에 이견을 찾기 어려웠다.
당선인 총회가 열리기 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제21대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전반기와 후반기를 책임지며 국회를 이끌었는데,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중립’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느라 어떤 뚜렷한 입법 성과를 낼 수 없었다는 불만이 많았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입법부에서 이를 견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파이터형 의장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당선인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세론은 무너졌다. 결과 발표 후 당선인 총회장엔 잠시 적막감이 감돌았을 만큼 예상하기 어려웠던 결과였다. 우 의원은 “저는 이것을 이변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친명이 어디로 쏠렸다는 것은 언론의 과한 추측이고, 이재명 대표가 누구를 향해 마음을 줬다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결과를 놓고 민주당 내부는 뒤숭숭한 모습이다. 강경 지지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원게시판과 이재명 대표 팬 카페 등에선 지지자들이 투표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5월 17일 의장 후보 경선 결과와 관련해 “상처받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지도부는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의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역사는 항상 앞으로만 전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 의원 발언을 반박했다. 우 의원은 “최고위원은 책임 있는 국회의원인데 그렇게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총선 당선자들의 판단과 당원을 분리하고 갈라치기하는 것 아닌가. 수석 최고위원으로서 아주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박지원 민주당 당선인도 일요신문 유튜브 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해 “정 의원 글은 부적절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정 최고위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 뜻은 그게 아니”라면서 “당원들의 마음과 의원들의 마음 차이가 너무 멀었고, 거기에 실망하고 분노한 당원들이 실재한다”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그럼 누구라도 나서서 위로하고 그 간극을 메워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그 노력을 제가 자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갈라치기라고 말하는 순간 갈라치기가 아닌 것도 갈라치기처럼 비춰질 수 있기에 그 발언 자체가 저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은 제 진정성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을 놓고 당내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 리더십과 연관을 짓는 시선도 있다. ‘명심’에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견해다. 이에 대해 친명으로 분류되는 한 당선인은 통화에서 “우원식은 그럼 비명이냐.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 모두 친명이다. 의원들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우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정치권 화두였던 ‘윤석열-추미애 리턴매치’도 불발됐다. 2020년 최대 이슈였던 ‘윤-추 갈등’이 무대를 바꿔 행정부와 입법부 갈등으로 재연될 가능성도 이번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입법부가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경우 그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파이터형 의장이 대통령과 대립하며 정쟁이 불거지면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지지층이 결집을 해 51 대 49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민생 관련 입법을 주도하며 중도층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선 비교적 덜 강경한 의장이 낫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을 마친 뒤 추미애 당선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해 주신 국민의 열망, 당원의 기대에 못 미쳐 송구하다”면서 “어느 자리에서든 민의를 따르는 ‘개혁국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추 당선인은 “의장 후보 경선에서 선출된 우원식 후보에게 축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여권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5월 16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주당이 우원식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했다”면서 “추미애 당선인을 국회의장으로 뽑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윤 의원은 “이재명 대표는 그게 당심이라고 했다”면서 “강성 지지층에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추미애 당선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원식 의원을 선택한 민주당이 무섭다”고 했다. 윤 의원은 “선택의 기준은 대선 승리에 누가 더 도움이 될까”라면서 “앞으로 민주당 모든 기준은 대선 승리뿐이다. 중도층을 향한 민주당의 변화가 두렵다”고 했다.
그는 “패배한 우리보다 승리한 민주당이 더 먼저 변하고 있다”면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더 빨리 더 크게 변화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회의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명심에 대한 견제심리와 추미애에 대한 견제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채 교수는 “어쨌든 두 사람 다 친명인 가운데, 우원식 의원은 강성파고 추미애 당선인은 좌충우돌형”이라면서 “이 중 리스크가 덜한 쪽을 뽑은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통제할 수 있는 강경파인지, 통제할 수 없는 강경파인지 여부가 쟁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 “명심에 대한 견제에 따른 이탈표에다 추미애 비토기류 이탈표가 얽히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