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한발 쫓아가 역전, 김선기 뚝심 굿!
김선기(왼쪽) 대 김동우의 최강부 결승전. 뚝심을 보여준 선기 군이 깁스한 몸으로 최선을 다한 동우 군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출범한 지 3년. 성장 속도도 눈부시다. 어린이 바둑대회는 대소 수십 개지만 전국 규모로 치러지는 것은 ‘일요신문배’와 ‘대한생명배’ 둘뿐이다. 그리고 올해는 ‘일요신문배’가 어린이 바둑대회 스타트를 끊었다. 개막식 후 관계자들은 흔쾌한 얼굴로 “내년에는 어린이 선수만 1000명도 기대할 수 있겠다. 한번 해보자”면서 주먹을 쥐었다.
최강부 결승전은 특설대국장에서 벌어졌다. 주인공은 군포에 있는 능내초등학교 6학년 김선기 선수와 서울 응암초등학교 6학년 김동우 선수. 축제에서도 조명 받는 사람은 있는 법. 선기는 키가 크고, 동우는 작은 편이어서 체구는 다르지만, 갸름한 얼굴에 안경을 쓰고 눈매가 날카로운 것은 닮았다. 바둑TV의 카메라가 돌아가자 두 소년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입을 꼭 다물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1> 참가 어린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반상을 응시하며 신중하게 돌을 놓고 있다. <2> 대회장 한편엔 보드게임 공간이 마련돼 있다. <3> 한 어린이가 일요신문 신상철 대표의 오목게임에 훈수를 하는 모습. <4> 김신영 초단이 다면기 지도대국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배에서 입상하면 한-중-일-대만, ‘아시아 4개국(올해는 6개국) 어린이 바둑대회’에 우리 대표단으로 나간다. 이 대회도 축제다. 참가자 대부분에게 시상한다. 비록 종잇장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상장 하나가 소중한 추억, 요즘 말로 하면 잊지 못할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 선수단은 약 10명, 그 중 네 자리가 일요신문배 입상자에게 돌아온다. 대회는 4개국을 돌아가면서 열린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렸고 올해는 홍콩, 내년에는 상하이다.
그런데 올해는 최강부가 아니라 유단자부 입상자 4명이 홍콩에 간다. 규정을 좀 바꾼 것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경우 일본에서는 25명이나 왔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상장 하나 받지 못했다. 네 나라 관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얘기했다. 이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 우리도 동의했고, 그래서 올해는 최강부 대신 유단자부 입상자를 보내기로 한 것. 선기와 동우는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일부러 져 줄 수는 없지만, 티켓은 양보해도 좋을 것 같으니까. 바둑은 혼자 두는 게 아니고, 함께 두는 것이니까. 물론 최강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이의를 제기한 어른들이 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연구해서 내년에는 다시 바꿀 것이라고 한다. 최강부 유단자부 고급부 저급부 등을 섞어 보내는 것이다. 그게 좋을 것 같다.
올해 대회에는 6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관중석의 한 학부모가 자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동우는 왼팔 손목 부근에 깁스를 하고 있다. 그걸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986년 1월에 열린 일본 바둑계 최고의 타이틀 제10기 기성전(棋聖, 기세이) 도전7번기의 제1국. 타이틀 보유자 조치훈 9단, 도전자는 조 9단 필생의 라이벌로 불리는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대국자의 한 사람이 왼팔과 왼다리에 칭칭 깁스를 하고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 바둑판을 향해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조치훈 9단이었다. 당시 조 9단은 일본 바둑계를 천하통일하고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타이틀 매치 개막전을 며칠 앞두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치 6개월의 중상을 입었고, 일본기원 규정은, 공식 대국은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대국 날짜 연기가 안 되기에 주치의도 주변 인사들도 모두 조 9단에게 기권을 권했으나 조 9단은 “죽더라도 바둑판 앞에서 죽겠다”고 말하며 의료진과 함께 주최 측 요미우리 신문사의 전용기를 타고 대국장으로 날아갔던 것. 실로 기괴하고 섬뜩한 그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 바둑팬을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사진이 생각나자 쓸쓸해졌다. 쓸쓸함과 나이는 관계가 없구나.
결승전 기보는 대회 심판위원장 김영환 9단이 해설해 주었다. 돌을 가려 김동우 선수가 흑을 들었다.
<1도>는 중반전이 시작되는 장면. 우상변쪽 백진에 흑1로 뛰어들었다. 뭔가 싸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지금으로선 여기뿐이다. 백2와 흑3의 철주(쌍점, 雙點)가 재미있다. 우하 백진은 A의 곳이 약점이다. 백2는 그걸 의식한 것. 흑3은, 보통은 9의 자리로 한 칸을 뛰는 것이 보통이지만, 백2가 놓인 지금 흑9면 백B로 밑붙여 넘는 수가 있다. 백4부터 흑9까지는 이런 정도였는데?
<2도> 백1은 당연했지만, 다음 백5로 호구친 수, 이게 선기의 초반 큰 실수였다. 김 9단이 “만일 백이 진다면 이게 패착이 될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한 수다. 흑4는 게걸음 같아 이상해 보였지만, 동우의 재치가 번득인 수였고 흑6으로 백말은 봉쇄되었다. 우상과 우하의 백말, 둘 중 하나는 무사할 수 없다.
<3도> 백1~7로 우상의 말은 탈출했지만, 대신 우하 백말을 향한 흑8의 치중이 기다리고 있었고, <4도> 흑14에 이르러 우변~우하 일대 백말이 전부 잡히고 말았다. 승부는 끝난 것 같았다. <4도> 백13으로 <5도> 백1로 붙이는 수는 없을까. 있다. 흑2면 백3에서 5로 하나 먹여치고 7로 끊는다. 흑8로 단수치면 백9로 배후를 되끊으며 단수. 이래서 백이 먼저 따내는 유리한 패(백11은 5의 곳 따냄). 이건 백이 성공 아닌가. 맞다. 성공이다.
그러나 흑은 백이 1로 붙여올 때 <6도> 흑2로 이쪽을 호구쳐 지키면서 A와 B를 맞보기로 하는 수가 있는 것. 결론은 뭐냐. <2도> 백5로는 <7도> 백1로 한 칸을 뛰어야 했다는 것.
<8도>는 중반의 막바지. 형세가 넉넉한 흑은, 하변 백진이 꽤 커 보이는데도 흑1~7로 그냥 위에서 깎는 것으로 마무리를 서두르는데, 거기까지는 틀린 게 아니었지만, 백8로 호구쳐 올라올 때 흑9로 한 칸 뛴 것이 약했다고 한다. “흑9로는 계속 A에 젖혀 중앙을 확장해도 무리가 없었으며 이걸로 낙승이었다”는 것. 차이가 계속 좁혀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9도>는 끝내기도 정리되고 있는 장면. 우상 흑1, 실착이었다. 다음 백이 우변 2의 곳을 찝을 때, 흑이 응수하지 않고 좌상귀 쪽 3으로 먹여친 것은 초읽기에 쫓긴 시간 연장책(제한시간 각 10분에 20초 초읽기 3회)이었는데, 이것도, 백4로 응수한 것도 피차 실착이었다고 한다.
백4로는 <10도>처럼 백1-3-5를 결정해야 했다. 이것과 실전 <9도>를 비교하면, <9도>에서는 A의 곳이 흑집이 되었고, 나중에 흑B로 찝어 백이 C의 곳을 이어야 했다. 반대로 D의 곳을 백이 선수하면서 여기서 한 집을 벌었던 것.
<9도> 우하귀 쪽 백10으로 젖히고 12로 따내 패로 만든 것이 기민했다. 결국 흑이 E의 곳을 이어 굴복했으니까. 김 9단 해설의 마지막은 “<9도> 흑1로는 우하 백10 자리에 내려섰으면 반면 9집, 흑이 2집반은 이겼다”는 것이었다.
바둑은 무려 292수에 이르러 끝났다. 백이 1집반을 이겼다. 많이 불리했는데도 한 발 한 발 쫓아와 역전승을 일궈낸 선기의 인내심이 굉장하다. 30년 전 옛날에 조치훈이 졌듯이 동우도 졌지만,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결승전은 바둑TV에서는 18일,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영되었다. 내년에 1000명의 어린이가 한자리에 모여 바둑 두는 장관을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소나기 퍼붓는 듯한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