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병원에 입원한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의 한 장면.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최근 국내 사법사상 최초로 법원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4월 검찰이 종교적 문제로 가족이 치료를 의뢰한 오아무개씨(여·32)와 정아무개씨(여·35) 등을 강제로 정신병동에 입원시킨 혐의로 현직 정신과 의사 3명을 잇따라 불구속 기소함에 따라 심리에 들어갔다.
법원에 제출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0년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씨와 정씨는 이틀 간격으로 각각 남편 등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수도권 소재 A정신병원을 찾게 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정통 기독교 교단에 의해 소위 ‘이단’으로 낙인찍힌 B교회 신도라는 것.
그 중 오씨는 1998년경부터 종교문제로 남편과 수시로 갈등을 빚어왔다고 한다. 경찰 수사기록 등을 보면, 남편은 “사이비 종교를 믿느라 집안 일을 등한히 한다”며 오씨를 20여 차례에 걸쳐 흉기로 위협하거나 폭행한 것으로 돼 있다. 한번은 부인이 다니는 B교회에 휘발유통을 갖고 들어가 불을 지르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남편은 오씨에게 “개종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 요구했으나, 오씨는 번번이 이를 거절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결국 오씨는 2000년 6월경 남편의 폭행을 피해 친정이 있는 전북 완주로 내려갔으나, 가정불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남편은 그 해 12월 말 다른 수를 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경기도 소재 모교회 목사 C씨가 B교회 신도들을 상대로 한 개종교육에 일가견이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오씨를 C씨에게 맡기기로 한 것.
미리 C씨와 약조를 한 그는 일단 오씨의 친정 부모, 곧 장인 등을 설득해 오씨를 경기도 용인의 언니 집으로 보내도록 했다. 이어 그는 오씨를 강제로 차에 태워 C씨가 운영하는 교회로 데려간 뒤 3일간 감금해 놓고 개종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오씨는 정통 기독교 교리에 입각한 C씨의 설득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개종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에 절망한 오씨의 남편은 결국 부인을 개종시키려면 한동안 B교회측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막아야 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이 소개한 A정신병원으로 오씨를 데려간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한층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31일 남편과 친정 식구들에 의해 병원에 입원당한 오씨는 이듬해인 2001년 3월22일까지 무려 85일간 폐쇄병동에 갇혀 지내게 된다. 의료진이 오씨에게 내린 진단은 ‘망상장애’. 흔히 ‘편집증’이라고 불리는 망상장애는 ‘사실과 다르며, 주위 사람들의 설명이나 설득에도 교정되지 않는 체계화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오씨는 이 기간 중 일반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병동에서 생활하며 병원측이 처방한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했다고 한다. 또한 병원측은 오씨의 증세가 중증 정신병에 해당한다며 외부와의 전화통화와 면회, 산책 등을 전면 금지시킨 것으로 돼 있다.
정씨가 같은 병원에 입원한 경위도 오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에서 B교회를 다녔던 정씨도 남편과 심각한 갈등을 빚다 남편과 친정 식구들의 손에 이끌려 이단종교 전문가인 C씨의 교회에서 개종교육을 받았으나, ‘효과’가 없자 A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된 것이다.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 정씨는 2001년 1월5일 남편과, 남편의 ‘지원’ 요청을 받은 오씨의 남편 등에 의해 차량에 태워져 A병원에 도착한 뒤 오씨와 마찬가지로 ‘망상장애’ 진단을 받아 입원 조치됐다.
정씨는 그로부터 3월16일까지 72일 동안 오씨와 같이 외부인 면회와 산책 등을 금지당한 채 병동에 갇혀 지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오씨 등은 병원 환자 중 외출을 나가던 알코올 중독자에게 몰래 부탁해 B교회측에 ‘SOS’를 치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 뒤 B교회측은 신도들을 대거 동원해 A병원측에 오씨 등을 당장 내보내도록 압력을 넣었고, 결국 병원측은 오씨와 정씨측 변호사들의 정식 퇴원 요구를 받고 두 사람을 퇴원시켰다.
두 사람은 사회에 나오자마자 즉시 각자의 남편은 물론, 자신들을 입원시킨 A병원과 소속 의사 D, E, F씨 등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야간·감금 등) 및 정신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남편은 경찰 수사 등을 거쳐 재판에 넘겨졌고, 이 중 오씨의 남편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 등을 모두 인정해 오씨의 남편에게 실형을 선고했으나, “범행에 이른 전후 사정과 범행 정도 등을 감안한다”며 법정구속을 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남은 재판을 받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A병원과 소속 의사들에 대해서는 1차 수사에서 ‘혐의 없음’ 또는 ‘기소 유예’ 등으로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그 사유에 대해 ▲병원 규정상 입원 환자의 안정을 위한 치료 차원에서 일정 기간 면회 등을 금지시키거나 가족에 한해 면회를 허용하는 등 면회 제한 조치를 할 수 있고 ▲향정신성의약품 투약은 통상적인 치료과정에서 복용케 하는 약물로 그 양이 적정 수준을 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오씨 등은 다시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제기했다. 이들은 항고이유서 등을 통해 “주치의 D씨 등은 우리가 ‘망상장애’를 앓는 중증환자인지를 가리기 위한 별도의 문진을 하지 않고, 나중에 심리 및 인성검사 결과 정신적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허위진단을 내려 강제 입원을 계속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D씨 등이 이전에도 B교회 신자인 대학생 전아무개양을 망상장애 환자로 진단해 입원시킨 전례가 있고, 병원장과 의사들이 정통 기독교 신자들인 점 등을 들어 “우리를 입원시킨 것은 사실상 개종을 유도할 목적의 불법 감금행위”라는 주장을 폈다.
이 중 오씨는 “A병원에서 나온 직후 서울 G병원에서 정신병 검사를 받은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A병원측은 그동안 나를 정신질환자로 간주해 약을 투약하는 등 불법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재조사한 서울고검은 지난 2월 정신과 전문의 D, E씨를 불법 감금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A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할 당시 전문의와 상의 없이 오씨를 입원시킨 혐의(정신보건법 위반)로 모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F씨를 추가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D씨 등은 오씨 등이 개종을 종용할 목적으로 가족들이 강제 입원시키는 것인 줄 알면서도 확정적인 정신병이 없는 오씨 등을 강제 입원시켜 감금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원측과 해당 의사들은 검찰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며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병원측은 관련 재판 과정에서 “오씨 등을 입원시키기에 앞서 남편 이외에 친정 부모와 형제들로부터까지 동의를 받았고, 담당 의사들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입원 결정을 내렸다”며 “이를 감금행위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병원측은 또 “정신병동은 대부분 폐쇄병동이며, 치료 목적에 따라 일정 기간 전화와 면회 등을 제한하는 것은 다른 병원들도 마찬가지의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병원측과 해당 의사들은 “이 사건으로 지난 3년간 경찰과 보건복지부, 검찰 등에서 수도 없이 많은 조사를 받았고,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당초 검찰이 무혐의 판정을 내렸는데 뒤늦게 뒤집힌 경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병원측은 “얼마나 종교적 폐해가 컸으면 남편과 가족들이 오씨 등에 대한 입원 치료까지 의뢰했겠느냐”면서 “그럼에도 B교회측은 이 사건을 종교 박해문제로 포장하고, 1천여 명의 신도를 동원해 병원 앞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는 등 내부 결속용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법조계는 물론 의료계와 종교계에서도 사법부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오씨 등의 자유의지를 더 중시하느냐, 아니면 의사들의 진료권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상이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매우 중요한 사법적 판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