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환씨 | ||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세간에는 전씨가 사업을 하느라 동남아 일대를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일요신문>이 최근 2년 동안의 전씨 출입국 사실을 확인한 결과, 그가 지난 2002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 동안 무려 9차례에 걸쳐 필리핀을 왕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는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필리핀에 머물다 귀국했다. 그렇지만 지난 2002년 3월5일 출국해서는 같은 해 10월8일 입국, 7개월 동안 필리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에도 3월13일에 출국, 8월4일에 돌아왔다. 필리핀 체류기간이 5개월에 이르는 것. 그가 마지막으로 필리핀에 나간 시점은 지난해 10월2일로, 이때도 두 달여 뒤인 12월18일에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년 동안 그의 해외 출입국 기록을 종합해 보면 무려 1년 반 정도 필리핀에서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별도로 그는 같은 기간 동안 중남미와 유럽 등지에도 드나든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등을 운영하면서 탈루한 세금 1백여억원을 갚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국법에 따르면 5천만원 이상 세금을 체납할 경우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전씨가 외국을 드나드는 데 아무런 막힘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형 전두환씨와 마찬가지로 ‘무일푼 알거지’라며 세금까지 체납하고, 자신의 지인에게 빌렸던 수십억원도 갚지 않았던 그가 무슨 사연이 있기에 필리핀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갔던 것일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경환씨가 필리핀을 오가면서 해외채권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필리핀 현지에서는 리조트 사업에 손을 댔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잦은 ‘필리핀행’에도 불구하고 현지 한인회와 교민들에게 전씨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전씨가 필리핀을 경유해서 제3국으로 다시 나갔다거나, 아니면 필리핀 내에서도 워낙 은밀히 움직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필리핀 현지에서 10년 동안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는 한국인 최아무개씨는 “(필리핀) 세부(Cebu)쪽에서 한국의 정계 인사가 리조트 사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사람이 전경환씨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씨가 전두환 비자금의 은닉처로 의심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순전히 전씨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그가 “부동산을 판 1백60억원의 재산이 있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게 ‘화근’이 됐다.
지난 98년 전씨에게 10억원을 빌려줬다가 되돌려 받지 못한 채 피해를 입은 승원건설 대표 승원표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98년 전씨가 ‘외국에서 부동산을 팔아 1백60억원이 있는데 국내로 가지고 들어오려다 시티은행에 예치해 놨다’며 증명서까지 보여줬다. 그러면서 당장 급하니 10억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뒤 벌써 3년째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씨는 “나 같은 피해자가 너댓 명은 더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검찰 주변에선 전씨가 해외에서 처분했다는 1백60억원대 재산이 전두환씨의 비자금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검찰은 재용씨 괴자금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비자금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고 있다. 특히 전두환씨의 친·인척들에 대한 폭넓은 계좌 추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전경환씨가 은닉한 재산이 과연 세상에 드러나게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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