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매각한 명륜동 집 전경. 맨 위층이 권양숙 여사 소유였다. | ||
청와대는 지난 2월27일 노 대통령의 재산 변동 내역을 공개하면서 “노 대통령은 빌라(명륜동 집)를 4억5천만원에 팔아 1억9천만원은 개인적인 빚을 갚는 데 쓰고 2억6천만원은 첫 신고 이후인 지난해 3월에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이 중 2억6천만원의 매각 잔금을 지난해 4월 첫 재산공개 때 신고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명륜동 집의 매각 대금이 청와대가 밝힌 대로 4억5천만원이 아니라 ‘6억원+α’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가 지난 1월 초 <일요신문>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명륜동 집을 6억원 이상에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인사는 “지난해 2월 초 노 당선자 부부와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노 당선자 부부는 내게 ‘빌라를 6억 얼마에 팔아 2억원을 최도술에게 선거 빚을 갚으라고 주었고 나머지 2억원은 은행 빚을 갚는 데 썼고 나머지 2억여원은 예금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명륜동 집 매각 대금을 축소 발표한 셈이 된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명륜동 집 매각 대금은 발표한 그대로다. 구체적 사실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해) 말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진상은 무엇일까. 노 대통령의 명륜동 집 매각과 재산 공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따라가봤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7년 3월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집(현대하이츠빌라) 한 채를 부인 권양숙 여사 명의로 구입했다. 주차장과 차고를 포함해 약 65평형으로 전용면적은 56평 정도다. 노 대통령 부부는 당시 종로 지역구 출마를 위해 이 빌라를 구입했다. 그 뒤 건호 정연씨 등 두 자녀와 함께 지난 2003년 2월 청와대로 이사하기 전까지 줄곧 이 집에서 살았다.
노 당선자측은 지난 2003년 1월19일 김현미 당선자 부대변인을 통해 “최근 노 당선자가 명륜동 자택을 팔기로 했다. 아직 정식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제3자와 구두로 합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이 집을 살 사람은 지인이 아닌 제3자이며 매각가격은 시가(4억∼5억원대)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은 그로부터 약 3개월이 흐른 뒤인 지난 2003년 4월24일에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새롭게 재산 공개를 했다. 이때 노 대통령의 신고 재산 총액은 자신과 부인 권양숙 여사, 장남 건호씨 명의의 재산을 모두 합쳐 2억5백52만4천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의 신고재산 총액은 이날 재산이 공개된 차관급 이상 청와대 비서진 10명 가운데 최저액을 기록한 정찬용 인사보좌관보다도 3백19만원이나 적은 액수였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재산신고 대상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날 재산 공개 때 눈에 띄었던 점은 노 대통령이 취임 직전 매각한 명륜동 현대하이츠빌라 매각 대금이 신고되지 않았던 것이다. 청와대측은 이를 두고 “집을 팔아 각종 채무를 변제하는 데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각 대금을 빚 갚는 데 모두 썼기 때문에 더 이상 신고할 현금 내역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해명’은 1년이 지난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월27일 재산 변동내역 공개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매각한 명륜동 빌라의 잔금 2억6천만원과 취임 전 개설된 보험료 7백만원이 신고에서 누락됐다”며 “당시 이 일을 담당했던 총무비서관(최도술)이 왜 누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불과 1년 만에 “집 매각 대금을 채무 변제에 썼다”는 주장을 뒤집고 “잔금을 신고 뒤에 받았지만 채권으로 신고했어야 하는데 누락했다”고 말을 바꾼 셈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대통령 취임 와중에 경황이 없어 행정상의 착오에 의해 누락이 됐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의혹이 일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일요신문>은 올해 1월 초 노무현 대통령의 장수천 빚 변제와 관련하여 민주당의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인 A씨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 지난 2002년 8월18일 대통령후보 시절 처음 기자들에게 자택을 공개한 노무현 대통령 부부. | ||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인 지난 2003년 1월 초 부산의 상공인들이 A씨에게 찾아와 “최도술씨가 선거 때 빚을 10억원가량 졌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며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A씨는 주변에서 이런 소문들이 자꾸 나오는 것을 보고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노 당선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 당선자의 딸 정연씨 결혼식 다음날인 2003년 2월9일 아침 8시쯤 명륜동 자택에서 당선자 부부와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는 것.
이때 A씨는 최도술씨가 선거 빚 10억원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노 당선자에게 했다고 한다. A씨는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겠다고 생각해 노 당선자에게 직접 해명도 듣고 시중의 얘기를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도술이가 또 이영로 선배에게 허풍을 좀 쳤구나’라며 가볍게 받아넘기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 당선자 부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근 집을 팔았는데 6억 얼마를 받았다. 최도술이가 선거 빚 때문에 자신의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있다고 해서 2억원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은행 빚 2억2천만원인가를 갚고 현재는 2억 정도 남았다. 5년 동안 대통령 월급 받으면 이 집보다 더 좋은 집 살 수 있지 않느냐. 부산 가서 이 집보다 더 큰 집 사서 살면 좋지.”
A씨는 노 당선자 부부가 당시 매우 기분 좋게 웃으면서 집을 매각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남은 2억원을 기반으로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부지런히 저축해서 명륜동 집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A씨는 “노 당선자는 자신의 집을 팔아서 최도술씨에게 선거 빚을 갚으라고 돈을 주었던 분인데 어떻게 지방선거에서 쓰고 남은 돈으로 장수천 빚 갚으라고 할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A씨의 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도덕성이 높아 집을 팔아서라도 선거 때 졌던 빚을 갚았던 사람인데 선거 잔금으로 개인 채무를 해결할 정도의 비도덕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한 당시 A씨가 노 당선자 부부에게 “청와대로 이사갈 때 가재도구 같은 것 가지고 들어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노 당선자 부부는 “소파 같은 것은 조금 허름하긴 하지만 딸 정연이가 시집갈 때 가져가기로 했고 별로 버릴 것도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A씨는 이처럼 구체적인 설명을 할 만큼 이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노 당선자 부부와의 대화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노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주장을 하는 자리에서 빌라 매각 대금을 거짓으로 부풀린다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는다.
결국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명륜동 빌라 매각 대금은 4억5천만원이 아니라 ‘6억+α’가 되는 것이다. 당시 노 당선자측이 자택 매각 대금을 처음부터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A씨의 얘기 가운데 물음표가 새겨지는 부분은 노 대통령이 최도술씨에게 선거 빚을 갚으라고 2억원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윤태영 대변인은 지난해 재산 공개 때 노 대통령의 집 매각 대금이 누락된 것에 대해 “당시 이 일을 담당했던 총무비서관(최도술)이 왜 누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최도술씨는 무슨 이유로 명륜동집 매각 대금을 재산공개 때 누락했던 걸까. A씨의 말처럼 최씨가 노 대통령으로부터 매각 대금 중 2억원을 받았다면 이 돈을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개연성도 있다.
최씨는 과연 “당시 경황이 없어 착오를 일으켰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관계된 돈이 드러나는 걸 꺼려 일부러 누락시켰던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또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
A씨의 얘기에 따르면 매각 대금 가운데 2억원 정도는 은행 빚을 갚는 데 썼다고 했는데 실제로 노 대통령측은 97년 빌라 구입 때 진 빚 1억2천만원과 2000년 3월에 짊어진 장수천 채무 1억2천만원, 총 2억4천만원(근저당 설정액 기준)을 2003년 2월21일과 3월8일(등기부상 근저당권 해제 시점)에 각각 변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당시 노 당선자 부부는 남은 2억원은 저축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A씨에게 말했다는데 이 부분은 올해 재산 공개에서 밝혀진 매각 잔금 2억6천만원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최도술씨에게 건너갔다고 추정되는 2억원만이 재산 신고 내역에서 빠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런 의혹에 대해 “매각 대금 4억5천만원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을 했다. 그리고 구체적 사실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 같은 주장을 한 인사 A씨의 실명을 청와대측에 밝힐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불특정한 사람이 말한 것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아 명륜동 집 매각에 얽힌 새 의혹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기자는 노 대통령의 명륜동 집을 매입한 박아무개씨(33)를 통해 구체적인 매입 금액을 확인하려 했으나 박씨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과연 A씨의 주장이 과대포장된 걸까, 아니면 청와대가 밝힌 집 매각 금액이 축소포장된 걸까. 노 대통령이 재산신고 내용을 직접 챙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이상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에게는 대통령의 재산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이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