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 결집 속 ‘연출론’도 솔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며 대국민 사과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권 보수층을 결집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산을 뺀 대구·경북, 울산·경남에선 느슨했던 새누리당 지지세가 눈물을 머금고 반짝 반등할 것이란 이야기가 크게 회자하는 중이다. 대구·경북에선 “선거는 끝났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사과 이후 6·4 지방선거 ‘낙동강 전선’의 물밑 흐름을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로 동정여론이 확산, 돌아섰던 영남권 보수층이 다시 결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지난 19일 새누리당 대구시장 선거대책위 발대식. 이 자리에선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자”, “우리가 박근혜를 지켜야 한다”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날 발대식에선 당권주자로 불리는 김무성 이인제 의원이 참석했는데 이제는 친박으로 분류하지 않는 김 의원조차 박근혜 정부를 도와줄 수 있도록 새누리당 후보(권영진)를 중심으로 결집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본부장이었던 김 의원 자신이 기획통이었던 권 후보의 진면목을 장담한다고 했다.
야권의 잠룡 중 한 명인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다분히 의식한 보수층 결집 호소가 속속 들렸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핵심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박근혜의 눈물이 동정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박근혜가 울 때 나도 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흩어진, 김부겸 인물론에 설득당한, 새누리당이 해주는 게 없다고 돌아섰던 희미해진 보수가 회귀하면서 복원, 결집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눈물의 호소가 반등의 열쇠로 작용하고 있다. 병실에 누워있는 친구들을 업어서라도 투표소로 가겠다는 어르신들의 말에 힘이 난다.”
김부겸 후보는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을 1호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박근혜 마케팅’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박 대통령과 과거에 함께 찍은 사진도 언론사에 배포했다. 하지만 여당 대통령,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김부겸 대박론’은 눈물 앞에서 확장을 멈추는 듯하다.
김 후보 캠프 측에선 “대중적 인지도에선 (권영진 후보를) 앞서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세월호 정국으로 시끌벅적한 축제 선거가 물 건너 간 상황이라 다른 유세 방법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대구에선 그동안 김 후보가 대구시장이 되면 곧바로 야권의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한다는 이야기가 설득적으로 회자하면서 여론이 동요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박근혜의 눈물은 김 후보에게 ‘찬물’이었던 셈이다.
재선의 김관용 새누리당 후보가 나선 경북지사 선거는 지역 언론에도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중기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존재감이 떨어지는데다 ‘묻지마 박근혜’가 가장 강력한 지역 정서상 결과가 빤하다는 것이다.
‘눈물’의 파급력은 계파 논란도 잠재우는 모습이다. 친이계여서 비박계로 분류하는 홍준표 새누리당 경남지사 후보는 김경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먼발치로 앞서가고 있다. 경남지역 여론을 확인한 한 지역 정치권 인사는 “큰 인물론을 내세운 홍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 정부 동정론까지 보태져 판세가 반전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경남지사 도전을 밝혔다가 창원시장 출마로 유턴한 친이계 안상수 후보도 독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부산시장 선거는 눈물의 영향력 확산에서 비켜가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안철수, 문재인 등 이미 대권주자 반열에 있는 미래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산은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 만약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의 힘을 업고 거기에 기댄 힘 있는 시장론을 펼치면 선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새누리당 지지층 외 모두가 오히려 뭉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무소속인 오거돈 후보는 안철수나 문재인을 끼고 돌지 않고 있다. 이런 단독 플레이가 더 무섭다고 본다. 판세의 키는 서 후보가 쥐고 있는데 만약 그의 입에서 국가혁신과 개조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없다면 박빙으로 간다고 본다.”
이 와중에 서울 여의도 정가에서는 새누리당발 여론조사 결과가 떠돌고 있다. 이 결과에 주목하는 것은 지난 19일 박 대통령의 눈물 대국민 사과 직후 생산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영남권 여권 지지층은 대부분 고정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야권 지지는 오히려 소폭 반등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을 ‘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이 전한 말은 이렇다.
“시기를 놓쳤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늦은 감이 크다는 것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참사 직후 찾아간 팽목항에서 유족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면 사정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사가 한 달이나 지난 뒤여서 진정성이 있느냐는 물음이 자꾸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이미 인터넷 포털에서 ‘박근혜’로 검색을 하면 자동완성 기능에 ‘연출, 연기, 쇼’ 등의 단어가 따라 붙는다.”
일부 언론에서는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 눈물 회견 전 주말에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 대구, 경북, 울산, 경남에서만 새누리당 후보가 앞서 있고 영남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여권 후보가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등 야권은 여의도 정가에서 떠돌아다니는 새누리당 여론조사가 ‘역정보’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전에서 뒤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노년층을 투표소로 불러들인 새누리당 전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한 정치평론가는 “세월호 참사로 불리해진 새누리당이 더욱 교묘하게 여론전을 펼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눈물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지명하고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을 경질한 조치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 후보자가 참사 수습과 부정부패 척결의 적임자인지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후임 안보실장, 국정원장 세평이 어떻게 나타날지 여부다. 일각에선 “선거의 여왕이었던 박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를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