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평가 앞두고 아군들도 등돌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6일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을 면담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친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최근의 여권 판세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앞으로 포스트 박근혜를 놓고 여권 내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이제 집권 2년차인 박 대통령에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세월호 참사로 인한 후유증이 현 정부 내내 계속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어 사실상 조기 레임덕에 접어든 것처럼 박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박 대통령이 여당에도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긴 힘들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대체 불가의 성격을 띤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당 대표 발탁, 2007년 대선 경선 등을 거치며 당의 간판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40%대의 공고한 지지율과 ‘친박’이라는 친위 세력을 바탕으로 당을 좌지우지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박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발언은 그만큼 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 의원들의 ‘로열티’가 남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앞서의 친박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 힘의 원천인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친박 의원들의 이탈 조짐이 확연히 감지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월호 참사 후 박심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정치권에선 서울시장 경선 결과를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대놓고’ 박 대통령을 활용했던 김황식 전 총리는 비박계 정몽준 후보에게 완패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둘 사이의 표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김황식 21.3%, 정몽준 71.1%)”면서 “정몽준 후보는 아들과 부인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후발주자라고는 하지만 친박에서 밀었던 김 전 총리는 정몽준 후보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다. 이는 친박 내에서 박심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대구시장 경선에서 친박계 후보들이 비박 권영진 후보에게 진 것도 비슷한 차원에서 이해된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경 해체’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고 머리 숙여 사과한 것을 놓고 거센 국민 여론은 물론 심상치 않은 당내 분위기를 달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으로 본다.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표명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전격 경질한 것이나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탁한 것 역시 그동안 보여준 인사 스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 7월 전당대회, 재·보궐 선거 등 중요한 정치일정들이 연이어 실시되는데 너무나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친박 내부에선 박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인적개편에 대해 솔직하게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총리 후보자 발표가 났던 5월 22일 오후 <일요신문>은 친박 의원들 10명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그 결과 이들 중 7명이 “박 대통령 대처가 미흡하다”고 밝혔다.
5월 19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서청원 의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이종현 기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군’을 향한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친박 의원들 반응치곤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한 친박 의원은 “대국민담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박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담화문에서) 개각 문제가 빠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또 야당의 인적쇄신 요구 영순위였던 김기춘 비서실장을 경질하지 않은 건 실책이라는 견해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일부 친박 의원들은 박 대통령 탈당까지 주장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세월호 참사 후유증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느냐. 적어도 2~3년은 갈 것이다. 박 대통령 임기 내내 따라 다닐 것이란 얘기다. 국정 운영을 위한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조기 레임덕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제 정치와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국가 개조만을 위해 힘을 써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세월호 수습에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탈당은)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 박 대통령은 성공적인 임기를 위해선 당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집권 2년차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적은 없다”며 불쾌해했다.
여권 핵심부는 박 대통령을 향한 이러한 비토 움직임이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를 치르면서 본격화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권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많은 후보자들이 앞 다퉈 박 대통령을 선거에 활용했다. 또 박 대통령은 그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왔다. 그런데 ‘박근혜 마케팅’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면 박 대통령 힘은 급격히 빠질 것”이라고 점쳤다.
실제로 여권 주변에선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를 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는 이 두 선거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낼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7월 14일)는 박 대통령에게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주류 좌장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면 박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김 의원 측과 가까운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김 의원도 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김 의원도 박근혜 정부 성공을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도 “다만,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할 말은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는 게 아니고 거수기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과 전당대회에서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서청원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 전당대회는 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겠다고 나오는 후보(김무성)를 당원들이 얼마나 지지해줄지가 관건”이라면서 “친박계에서 그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인물은 서 의원밖에 없다. 서 의원은 박 대통령을 확실히 도울 수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