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한 관계자는 “곽 판사는 합리적 개혁성향의 소장판사로 알려져 왔으며, 지난해에는 한 미담 사례가 알려지면서 몇몇 언론사들로부터 ‘금주의 인물’에도 선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일 인물인 한 판사가 불과 1년도 안되는 사이에 극과 극의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곽 판사가 물의를 빚은 것은 지난 5월15일 새벽. 이날 곽 판사는 후배인 최아무개 교사(33)와 함께 술을 마신 후 만취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었다. 택시 기사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정작 더 큰 ‘사건’은 두 사람이 경찰서로 연행된 뒤 벌어졌다.
당시 곽 판사와 최씨가 조사에 나선 경찰관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 경찰측의 주장. 이에 경찰이 최씨에 이어 곽 판사에게도 수갑을 채우려 하자, 최씨가 “현직 판사한테 수갑을 채우느냐”며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경찰이 최씨는 현장에서 바로 불구속 입건한 반면 곽 판사는 부장판사의 신원보증을 받고 귀가조치하는 바람에 ‘현직 판사에 대한 봐주기 수사’라는 새로운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던 것은 이후 경찰 조사에 대한 곽 판사의 대응 때문이었다. 양천경찰서는 추가 보강수사를 위해 곽 판사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출석을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 상당수 언론에서는 ‘현직 판사가 자신의 신분을 이용, ‘배째라’식으로 버티고 있다’고 비난을 가했다.
이에 대해 곽 판사는 “폭행은 후배와 경찰의 실랑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당했다. 우리는 취한 상태에서 2명이었고, 경찰관은 6명이었다. 판사니 경찰이니 하는 신분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항변했다. 그는 “조사를 피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가해자에게 조사를 받을 순 없는 만큼 검찰에서 조사한다면 당당히 응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론은 곽 판사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곽 판사의 지난 행적이 법조계 주변에 알려지면서 또 다른 화젯거리로 오르내리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처음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문제의 그 판사가 곽 판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며 “평소 (그가) 합리적이면서도 원칙을 중요시하는 강한 소신과 개혁 성향, 그러면서도 서민적인 고충을 이해하는 판결을 많이 내린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기에 더욱 놀랍고 의아스럽다”고 전했다.
실제 곽 판사는 지난해 ‘가슴이 따뜻한 아름다운 판사’로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근무하던 곽 판사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한 소녀가장을 상대로 ‘법대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 사건을 맡은 곽 판사는 고심 끝에 원고측을 불러 “내가 판결해 나이도 어린 여학생이 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어디 있겠느냐. 체납금은 내가 부담할 테니 소송을 취하하면 안되겠느냐”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소송이 취하됐고, 이 같은 사실은 원고측 소송대리인이 대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일제히 곽 판사의 아름다운 선행을 소개했고, 일부 매체에서는 그를 ‘금주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곽 판사는 법원 안팎에서 개혁 성향이 강한 소장 판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문흥수 전 부장판사가 지난 2001년 법원 인사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주도했던 ‘사법개혁모임’의 33인 멤버 중 한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사법개혁모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당시 한 부장판사가 이 모임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올리자 “판사라고 해서 헌법·법률 개정이 필요할 정도의 거대 담론을 논의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못한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시도가 방법론에 대한 논쟁으로 왜곡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재반박의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바도 있다.
당시 이 모임을 이끌었던 문흥수 변호사는 “곽 판사는 사명감과 개혁성, 성실성을 두루 갖춘 훌륭한 후배였는데, 어떻게 하다가 이런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었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언론에서 너무 흥미 위주로 판사와 경찰의 힘겨루기 양상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제쳐둔 채 경찰에 비해 상대적 강자인 판사를 지나치게 몰아붙이고자 하는 경향이 짙은 듯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양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범죄혐의가 있는 곽 판사가 계속해서 출석에 불응하고 있어 지난 4일 서울남부지검에 체포영장신청 수사지휘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송치가 됐으니) 앞으로 시시비비야 검찰에서 가리지 않겠느냐”면서도 곽 판사가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데 대해서 다소 불쾌한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곽 판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 시민이 경찰에서 부당한 피해를 당한 것”이라며 “그런데 언론에서는 마치 힘 있는 판사가 힘 없는 경찰을 상대로 역으로 부당한 피해를 입힌 것처럼 전달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는 “만약 내가 판사가 아니라 그냥 일반 시민이었다면 언론이 과연 이처럼 경찰 조사만을 근거로 일방적인 매도를 했겠느냐”며 “내가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은 조사 자체를 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피해를 가한 피의자에게 조사받을 수 없는 만큼 검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당당히 다 밝히겠다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경찰과 법원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검찰이 곽 판사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